/윤한솔(홍익불교대 교수)

한 평생을 살면서 사람들이 겪는 괴로움은 각양각색이지만 괴로움의 원인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람과 물질'이라 할 수 있다. 이 둘 중에서도 물질은 가진 것만으로 만족을 하거나 포기를 할 수도 있지만 사람은 다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사람과 사람은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야 하고 보살피며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그 당연한 사랑과 보살핌을 뜻과 같이 하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경상북도 영천군의 시골마을에 젊은 내외가 나이 많은 어머니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살았다. 젊은 내외는 논밭에 나가 일을 하고 할머니는 집에서 손자를 돌보며 살았다.
 

어느 날 아들 내외는 밭일을 나가고 할머니는 손자를 등에 업은 채 쇠죽을 끓이게 됐다.
 

할머니가 뜨거운 물이 펄펄 끓는 솥뚜껑을 열고 여물을 넣으려는 순간 등에 업힌 손자가 배가 고프다며 몸부림을 치다 물속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죽어버린 손자를 안방의 구들 목에 눕히고 홑이불로 덮어놓은 할머니는 그만 넋이 빠져 버렸다. 아들 내외는 어둠이 깔리자 집으로 돌아왔고 며느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홑이불을 덮어쓰고 자는듯 했다.
 

"어머님 어디 아프세요?" 시어머니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자 며느리는 부엌으로 가서 밥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아들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소리를 쳤다.
 

"집에 있으면서 밥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무엇을 하셨소?" 어머니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며느리가 밥상을 차려왔으나 할머니는 여전히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그러다 아들이 아내에게 말했다. "저 아이를 깨워서 밥 먹여라" 아이를 깨우려고 홑이불을 들친 아내는 아이가 푹 삶긴 채 죽어있는 것을 보고 주저앉아 통곡했고 아들은 어머니를 윽박지르며 달려들었다.
 

"내 새끼를 죽여 놓고 살기를 바라요? 저 아이를 업고 나와 함께 갑시다" 아들은 노발대발하며 변명 한 마디 하지 못한 채 쩔쩔매고 있는 어머니의 등에 죽은 아이를 업혀 집을 나섰다. 그리고 한 밤중이 돼 남편은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님은 왜 안 오세요?" "쓸데없는 늙은이! 함께 묻어버렸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젊은 우리야 자식을 또 낳으면 되지만 어떻게 어머니를 생매장합니까? 당장 어머니를 찾으러 갑시다" 아내가 울면서 애원했지만 남편은 어디에 묻어 놓았는지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로부터 2주일 후 남편은 아랫도리를 못 쓰게 돼버렸다. 죽은 어머니가 큰 구렁이로 몸을 바꿔 다리 부분을 완전히 휘감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말도 못하고 눈만 껌뻑거리며 지내다가 얼마 살지 못하고 저 세상 사람이 됐다.
 

평소 늙고 힘 없는 어머니를 우습게 여기다가 아이의 죽음으로 인해 일어난 분노를 삭이지 못해  어머니를 산 채로 파묻어 버린 불효막심한 아들!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이 일은 어머니가 죽는 것으로 끝이 나지 않았다.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기에 더 처참한 결과가 뒤따랐던 것이다.

/윤한솔(홍익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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