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웅칼럼>소설가

정현웅ㆍ소설가

일본이 독도를 ‘죽도’라고 하면서 그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약 100년 전에 한·일합방으로 한국을 점령할 무렵, 그 섬을 그들의 섬으로 결정한 것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렇게 따지면 한국을 점령하여 통치하던 1910년 이후를 근거로 해서 한반도도 일본 것이라고 주장해도 된다는 이야기가 성립한다.
실제 당시 일본은 한국을 영구히 일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어려 가지 정책을 사용했다.
한국에 유곽정책과 아편 정책을 사용해서 젊은이들이 피패해지도록 했으며, 나중에는 성씨를 없애 일본식으로 개명하게 했고, 한국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한국 인민들을 만주로 분산시키는 이민정책을 썼고, 한국의 주요 생산 수단인 농경지를 사들여 경제적으로도 점령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하층 계급이나 일반 노동에만 종사하게 하며, 고도의 기술직이나 지식인을 배양하는 것을 억제하는 정책을 썼다.
중국과 일본이 전쟁을 할 때는 한국의 처녀 약 20여만명을 군대 종군 위안부로 끌어가서 희생시켰다.
일본 당국이 낸 당시의 통계에 의하면 그들 한국 여성 중 약 14만 5000여명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병사들과 함께 희생되거나, 현지에 남거나, 병으로 죽었다.
이와같은 정책을 조직적으로 사용한 것은 한국을 말살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하지 않았다면, 한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무력으로 이웃나라를 점령하고 그 영토를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이다.
오래 전의 과거 역사를 보면 로마 제국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나라 땅을 점령하여 영토를 넓혔다.
피로 얼룩진 과거 영토 전쟁사를 보면 빼앗고 빼앗기는 역사가 이어진다.
그리고 그것이 인정되고 있었다. 다시 빼앗으려면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극히 드물게 평화적인 협상으로 돌려주는 경우가 있지만, 일단 빼앗은 땅은 영구적인 소유가 인정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봉건적이고 제국적인 시대가 아니다.
인류가 선진화되고 민주화되어 있는 이 시점에 전쟁에 의한 약탈은 인정되지 않고 있다.
독도는 약 1500여년 전에 신라에서 우산도·돌섬·쌍돌섬이라고 불려지는 땅이었다. 당시 울릉도는 우산국이라고 호칭했으며, 약 4000명이 살고 있는 작은 나라였다. 4000명이 모여도 한 나라가 성립되던 시절의 이야기다.
이 나라는 한국말을 사용하는 우리 민족이었다.
그때만 하여도 대마도는 쌍말섬이라고 불려지는 작은 나라였으며, 가야인들이 대거 이주해서 한국 언어를 쓰는 사람이 통치하고 있었다.
후에 왜국 사람이 많이 모여들면서 그 섬은 일본나라에 흡수되었다.
우산국(울릉도)의 왕 국지왕은 해적들의 기착지로 그 섬을 개방하면서 그 댓가로 보물 일부를 헌납 받았다.
신라 지증왕이 경고를 주었으나 고쳐지지 않자 이사부 대장군을 시켜 수군 3000명을 데리고 가서 우산국을 점령한다.
그 이후 울릉도와 독도는 신라의 영토로 귀속된다.
그러니까 기록상으로 볼 때 독도는 울릉도와 함께 약 1500여년 전에 신라의 영토가 된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한국이 실제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일본이 독도를 자기들의 영토라고 주장한다면 전쟁을 일으켜 빼앗아가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전쟁으로 영토를 약탈하는 것이 아닌 이상 어떠한 경우라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전쟁에 의한 영토 약탈은 오늘날의 국제 질서로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한반도를 노리는 일본의 약탈 근성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그래서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을 영원히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