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최근 개봉된 역린(逆鱗)이라는 영화가 있다. 역린이란 글자 그대로 보면 거꾸로 난 비늘을 뜻한다. 용의 턱 밑에 한 자 정도 길이로 거꾸로 솟아난 비늘을 일컬어 역린이라고 한다.
 

동양에서의 용은 상서로운 상상 속의 동물이다. 중국의 고사에서도 용은 유순하여 길들여 타고 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용에게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곧 절대로 역린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역린을 건드리는 순간 온순한 용은 사나운 용으로 돌변해 사람을 물어죽이기 때문이다.
 

영화 역린은 왕을 살해하고자 하는 세력과 왕을 지키고자 하는 세력 사이에서 24시간 동안 벌어지는 암투를 그린 작품이다. 정조는 비운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왕위에 등극한 이후 정조는 개혁정치를 표방하며 각종 제도를 새롭게 바꾸기 시작한다. 개혁에는 반대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이 영화는 그 제목이 암시하듯 왕의 살해라는 금지된 행위 즉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을 건드리는 것을 주된 테마로 하고 있다.

거꾸로 솟은 용의 비늘을 건드리면 용이 분노해 사람을 물어 죽이는 것처럼 왕에게도 역린이 있어 이를 절대로 건드리면 안 된다. 왕의 분노를 사 결국은 목숨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훌륭한 군주를 현군(賢君)이라고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현명하게 처신하고 바른 판단을 해야 현군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감정에 치우친 판단을 하면 현명해질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현군에게도 분노가 허용이 되는 경우가 있다. 역린을 건드리는 경우 분노를 표출,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도 현군이라는 칭호에 어긋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왕의 목숨을 빼앗으려 하는 경우는 이미 군주를 군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표출돼 있다. 곧 반란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왕의 목숨을 빼앗고자 하는 시도는 나름대로 비장함과 명분을 갖출 수 있다.
 

죽기를 각오하고 덤벼들기 때문에 한편의 영화가 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세상은 죽기를 각오하지 않고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는 사람들 때문에 문제다. 필사의 각오 없이 역린을 건드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일 수밖에 없으며, 역린을 건드리고 있는데도 그걸 모르는 군주도 어리석은 군주·우군(愚君)이다.
 

장난삼아 역린을 건드리는 사람은 세상에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걸 모르는 철없는 사람이다. 꼭 군주가 아니라 하더라도 사람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는 법이다. 사람에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면 당사자의 분노를 사 무슨 봉변을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김건호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