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든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정인보 선생이 지은 광복절 노랫말 일부다.

광복절 노래 뿐 아니라 3.1절, 제헌절, 개천절 등 4대 국경일 노랫말은 모조리 그가 지은 것이다.

학창시절 숱하게 불렀던 노래였지만 막상 노랫말을 지은 사람을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지난 2009년 생거진천 문학공원 內에 시비(詩碑)를 건립할 당시 지역과 연고가 있는 작고문인들의 정보를 수집하던 중, 정인보선생이 어린 날 한동안 진천지역에 머문 사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인보 선생은 1893년 서울에서 출생한 분이다.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한학을 배웠고, 10대 때부터 문명이 예사롭지 않았다 한다. 이는 구한말 부모와 더불어 진천·목천 등지에 칩거하며 학문에 전념한데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진천에 머무는 동안 초평의 완위각(만권루)에서 섭렵한 학문은 그를 한학, 국학은 물론 실학, 양명학과 역사학, 시조 등에 능통한 학자로서의 밑거름이 되기에 한 몫 했으리라 본다.

그는 우리의 '얼 사상'을 강조한 독립 운동가이기도 하다. "일언(一言), 일사(一事), 일행(一行), 일동(一動) 깡그리 골자(骨子)가 '얼'이어야 한다"고 강조한 일화는 명언으로 회자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끝까지 훼절하지 않고 꼿꼿하게 조선의 얼을 주창해온 까닭에 정부에서는 1949년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우리나라 4대국경일의 노랫말을 정인보에게 의뢰했으리라. 초평의 완위각은 월사 '이정귀의 고택' , 안산 '류명천의 청문당', '류명현의 경성당'과 함께 당시 4대 장서각으로 꼽힐 정도로, 일만 여권의 서책이 소장된 18세기 조선의 도서관 역할을 해 왔던 곳이다.

정인보는 이곳 만권루에 묻혀 학문을 닦고 민족정신의 기개를 키웠는지도 모르겠다. 후대인은 그 인연을 소중히 여겨 생거진천 문학공원에 정인보의 '조춘(早春) 시비를 세웠다. 오도카니 그의 얼이 시비(詩碑)속에 녹아 지금 이렇듯 그의 정신을 이어 가기 위해 소통을 꾀하고 있다.

조춘 (早春) / 정인보// 그럴싸 그러한지 솔잎 벌써 더 푸르다/ 산골에 남은 눈이 다산 듯이 보이고녀/ 토담집 고치는 소리 볕 발 아래 들려라//  나는 듯 숨은 소리 못 듣는다 없을 쏜가/ 돋으려 터지려고 곳곳마다 움직이리/  나비야 하마 알련만 날기 어리 더딘고//  이른 봄 고운자취 어디 아니 미치리까/  내 생각 엉기올 젠 가던 구름 머무나니/  든 붓대 무능하다 말고 헤쳐본들 어떠리//

8월도 서서히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1945년 8월 15일의 태양은 대한민국에 새 생명을 부여했다. 올해로 예순아홉 돌을 맞는 광복절, 바닷물도 춤을 췄을 그 해 여름을 그려보며 한때 우리 지역에 머물렀던 정인보선생이 노랫말을 지을 때의 그 마음을 헤아린다.

지금 터만 남은 완위각 복원과 더불어 우리지역 선현들이 걸어온 길을 더듬는다. 작태를 부리는 일본을 재조명하고 우리의 역사를 되새겨 나를 볼 일이다. 그리고, 이 시대에 맞는 지역의 역사를 새롭게 쓰기 위해 심중에 책을 펼 일이다. 이 여름은….

/김윤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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