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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도 아닌 이야기
유인순  |  webmaster@ccdail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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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8.11  19:5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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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제품 교육에서 요실금 치료수술용 매쉬인 NEO-T에 관해 교육을 받았다. 요실금은 폐경 이후의 여성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라는 말에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스물다섯의 청춘에도 참을 수 없는 요의로 거사를 치뤘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날마다 이어지는 모내기 때문에 늦모를 심을 때쯤이면 몸이 물젖은 솜처럼 무겁다.동이트기도 전에 일어나 들판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어두운 사립문 앞에서 기대 졸다가 일행들의 두런거리는 소리 속으로 몸을 섞는다. 못자리판에서 모를 찌고 써레질한 논에 모첨을 부릴 때쯤이면 해가 솟는다. 각자에게 주어진 일의 양은 평균 한마자기의 모를 심는 일이다. 쉴 틈이 없다.  구멍 뚫린 독에 물 새듯, 모진 일을 하다 보니 배도 쉬 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끼의 끼니와 두 때의 새참시간에는 먹는 일보다 쉬는 일이 더 급했다.
 

식욕과 휴식의 줄다리기다. 허겁지겁 먹고는 논두렁 어디쯤 아무렇게나 몸을 누인다.오뉴월 햇빛에 달구어진 논두렁이 마치 군불 땐 안방처럼 지친 몸을 끌어안는다.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사방 어디를 봐도 몸 숨길 곳 없는 허허벌판이다.
 

멀리 배수로가 있지만 풀 섶 다리 밑에서 엉덩이를 내 놓고 일을 보기도 대략 난감한 일이다. 어쩌란 말인가. 수많은 바늘 끝이 팽팽한 풍선을 위협하듯, 몸 둘 바를 몰랐다.
 

못줄 잡이가 무심하게 '어이' 하고 소리치면 못줄은 넘겨지고 마치 컨베어벨트에서 물건이 쏟아져 나오듯 내가 모를 꽂아야 할 몫이 생겨났다. 어떻게 하나, 생각만 하다가 끝내 결정 져야할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옆의 아주머니에게 울음보를 터트리듯 얘기를 했다.
 

내 몫의 일을 채워 줄 수 있는지. 그런데 그분의 말씀이 너무 시원하다 "싸". 어차피 우리는 분뇨 섞인 물에 서있고 옷도 흙탕물로 반 이상 젖어 있으니 문제 될게 없다는 이야기였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침내 나는 근육의 억제력을 상실했다.
 

자연의 법칙은 내게 굴욕을 강요했고 그곳에 서서 한 발자국도 움직여서는 안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전신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니었다. 따끈한 물로 머리끝부터 샤워를 하는 느낌이었다. 개운한 해방감을 맛봤다. 적당한 때에 일부러 철퍼덕 주저앉았다. 그리고 혼자 웃었다. 웃는데 눈물이 나왔다.
 

이제는 평범한 상황에서도 요실금 걱정을 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게 또 한 번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그래도 한 때, 생리적 욕구를 거스를 만치 벅찬 일을 해냈다는 경험은 내 몸에 에너지로 남아있다. 한 동안, 자존감이 침해 되었다는 생각으로 견디기 어려운 시간을 보냈었는데  이제는 비밀도 아닌 얘깃거리로 남아 있다는 게 나이 탓만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불구덩이를 지나온 것 같은 시절이다.
 

몸으로 땅에 엎디어 농사짓던 그 시절을 견디고, 노동의 극한을 넘어온 자부심을 얻었다. 그게 나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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