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정묵 청주시노인종합복지관장

몇 년 전에 산남종합사회복지관 근처에 텃밭을 일군 적이 있었다. 농작물을 심어놓고 비료도 주고 물도 주면서 열심히 가꿨다. 여러 날이 지난 후 밭에 가 봤다. 농작물은 보이지 않고 풀만 무성했다. 풀을 뽑아내고자 했지만 맨손으로는 무리였다. 뿌리가 깊게 박혀서 뽑히질 않았다.
 

며칠 뒤에 가서 보니 또 다시 풀밭이었다. 그 후 수확은커녕 밭을 통째로 갈아엎고 말았다. 제 때에 뿌리를 뽑아내지 못하고 줄기만 뜯어낸 결과였다. 뿌리가 남아 있으면 더 억센 줄기가 나오고 뿌리는 더 강해진다. 따라서 처음에 뿌리를 확실히 뽑아버려야 한다.
 

국회에서는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 처리에 합의했다고 한다. 특별법의 내용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철저한 진상규명이라 생각한다. 진상조사위원회든 특별검사든 뿌리까지 뽑아낼 수 있다면 환영이다. 그런데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뿌리를 뽑아낼 수 있는 연장, 다시 말하면 그에 합당한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 그 연장으로 기소권과 수사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요구가 있어왔다.

그런데 한 편에서는 그것을 연장으로 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왔다. 검찰에서는 돈과 권력이 개입된 많은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진행해 왔다. 수사 후의 결과를 보면서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은 납득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세월호도 돈과 권력이 밀착돼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유병언과 주변 인물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개인의 문제로 돌려서는 안 된다. 이는 뿌리는 두고 줄기만 뜯어내는 꼴이다.
 

지난 역사를 거론하지 않아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 뿌리를 뽑지 못해 또다시 자라난 싹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한 가지만 보자. 윤일병 사망사건. 이것은 어느 날 갑자기 드러난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 밝혀지지 않은 많은 군 사망사건이 있었다. 이 뿌리에서 나온 싹이다. 따라서 윤일병 사망사건은 끝까지 추적해서 책임을 묻고 합리적인 제도 개선을 해야 할 것이다.
 

풀뿌리를 뽑아내기 위해 호미를 사용하든 괭이를 사용하든 농부가 선택한다. 진상조사위원회든 특별검사든 그들이 필요한 연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자. 호미만 줘야 한다는 둥 괭이까지 줘야 한다는 둥 왈가왈부할 사항이 아니다. 뿌리를 뽑을 수 있는 연장은 스스로 선택하도록 앞에 두면 된다.

뿌리가 깊으면 그에 합당한 연장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연장은 진상을 밝히고자 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권한이다. 그 연장으로 깊이에 관계없이 뿌리까지 뽑아내는 진상규명이기를 바란다.

/최정묵 청주시노인종합복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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