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것들 중에 하나가 지금의 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일을 한다면 언제 해야 하고 언제 물러나야 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알고자 하는 것이 진(進)과 퇴(退)의 구분이라고 한다.
나아감을 진이라 하고 언제 할 것인가를 진이라고 하며 진의 용법은 태세(態勢)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태세가 진의 시기를 결정하는 가장 큰 방안이 되고 '이 정도면'하는 마음이 진의 법도를 흐리게 하는 함정이 된다.
그래서 이것을 아는 바가 진을 구분하는 법도라고 한다. 뭇사람들이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인가를 밤새워 고민을 하고 얼마나 할 것인가를 근심 속에서 고민을 하지만 정작으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의 문제다. 얼마나 준비 할 것 인가이며 무엇을 준비 할 것 인가이며 왜 준비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얼마나 준비했는가를 정확히 가리게 되면 언제 나아가야 할 것인가는 저절로 아는 것이며 이것을 왜 준비해야 하는 가를 정확히 가리게 되면 얼마쯤이나 얻을 수가 있는가를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즉 진의 비결이 되는 것이다. 퇴(退)를 물러남이라 하고 언제 손을 떼어야 할 것인가를 퇴라 하며 퇴의 용법은 지족(知足)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족이 퇴를 결정하는 가장 큰 방안이 되며 '조금만 더'하는 마음이 퇴의 법도를 혼란하게 하는 함정이 된다. 그래서 이것을 아는 바가 퇴의 시기를 구분하는 법도라고 한다. 뭇 사람들이 이곳저곳의 지자(知者)들을 찾아다니면서도 언제쯤 물러나야 하는 가를 묻기 보다는 언제쯤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묻고 다닌다.
하지만 이것은 무척이나 답답한 이야기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하나가 있으면 하나가 없고 하나가 나아감은 하나가 물러남을 의미하며 한쪽이 밝아지면 다른 한쪽이 어두워지는 것은 세상의 이치 가운데에서 음(陰)과 양(陽)이 교차하고 감(感)과 응(應)이 교차하며 굴(屈)과 신(伸)이 교차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의 시기를 놓치는 것은 그 동안 일궜던 많은 것들이 함께 달아나는 것이고 달아나는 그것을 애착하는 마음으로 부여잡게 되노라면 더욱 추해지는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이며 추해지는 자신을 모르기 때문에 죄를 범하게 되고 죄를 범하는 스스로가 하늘의 벌을 받아 가는 까닭이니 하늘의 벌에는 인정이 없고 다만 천도(天道)의 율법만이 있을 뿐이라서 그 고통인들 어찌해 견딜 만 하다고 하오리까?
용기(勇氣)로써 문제의 실마리를 찾았거든 참다운 겸손(謙遜)으로 탕제를 달이는 것처럼 하는 것이고 겸손으로 문제를 풀게 되었거든 참다운 항심(恒心)으로 탕제를 마시듯 해야 한다.
따라서 참다운 선을 택하고 참다운 용기를 발휘해 참다운 겸손을 행하고 참다운 항심을 유지하는 것이 간단과 평이의 법칙을 행하는 도리가 되는 것이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