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윤 세계도덕재무장 충북본부장] 신랑과 신부는 어떠한 경우라도 항시 사랑하고 존중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진실한 남편과 아내로써 도리를 다할 것을 모든 일가친척 그리고 많은 하객들 앞에서 굳게 맹세하면서 행복의 미소를 머금으며 같은곳을 향해 힘차게 첫발을 옮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우며 행복한 순간들인가? 
 

그러나 1960년대에 1만 572건에서 2013년 9307건으로 혼인건수가 12% 줄었고 같은시기의 이혼건수는 321건에서 3411건으로 무려 1062% 증가 했다는 우리도의 실태에 대한 보도를 접하면서 정말 안타깝고 씁쓸한 마음을 금할길이 없다.
 

물론 살아온 과정과 생활패턴 그리고 성격과 취미, 습관과 환경이 각각 다른 두 남녀가 만나 하나의 공동운명체를 만든다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겠지만 만남과 헤어짐의 기로에서는 나 아닌 우리 그리고 자녀들과 가정을 한번쯤 생각해 보면서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바다에 나갈때는 한번 기도하고 전쟁터에 나갈때는 두 번 기도해라 그러나 결혼식장에 갈때는 세 번 기도하라고 하지 않는가?
 

가출청소년들이 한해에 2만여명이나 되며 그 추세는 점점 증가하고 있고 학업을 중단한 고등학생들이 3만4000여명에 이른다는 통계와 배고픔에 못이겨 가게에서 햇반 몇 개를 훔친 것이 빌미가 돼 상습절도범이 되고, 친구들과 어울려 영웅심리에 도취돼 폭행강도 등의 늪속에 빠져 그늘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주변 일부 비행청소년들은 과연 성인들의 이혼과 무관하다고 할수 있을 것인가? 
 

또한 자녀 양육비와 친권, 재산분할문제 등을 놓고 이혼법정에서 다투는 부모들을 바라보는 자녀들의 아픈 마음을 생각해 봤는가? 삶은 매우 소중한 것이며 고귀한 것이다.
 

과거에 살아온 삶도 중요하고 현재 살고있는 삶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살아가야할 삶이 더욱 중요하거늘 현재의 삶이 힘들고 고통스럽다 해도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은 어리석고 바보스런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들은 나름대로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깊은 사연들이 있었겠지만 갈등의 순간 한번쯤 가정과 자녀 그리고 주변을 다시한번 돌아보며 불요불굴의 정신을 가지고 마음을 추스르면서 초심을 잃지말고 영원히 동행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실패나 불행은 한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져야 되는 것이며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들은 영원히 삶의 종착역까지 이어져가야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귀나 영화를 누리고 살던 사람이나 가난속에서 힘들게 살던 사람도 찰라의 세월속에서 인연의 끈을 놓으면 빈손으로 떠나는 것인데 잠시 머물다 가는 순간들을 위해 물욕과 불신과 갈등 그리고 질시와 반목의 늪속에 빠져 순간의 아픔을 헤쳐나가지 못한다면 먼훗날 올곧은 삶을 살았노라고 미소지으며 선조들의 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인가?
 

이혼한 후 그다음 선택이 반드시 잘되고 행복해진다는 보장은 없는 것 아닌가?
 

남편의 목소리와 아내의 목소리가 서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면서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며 행복한 둥지를 틀을 때 내 자녀들 또한 올곧게 성장하는 것이며 그 가정 또한 행복이 넘쳐흐르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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