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유봉기 한국자유총연맹 충북도지회 회장

광복절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고,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경축하는 날. 8월 15일.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어 우리나라가 독립하였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1949년 10월 1일 이 날을 광복절이라 하고 국경일로 정하였다.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의미있는 경축의 날이기도 하지만 1948년 8월15일 우리 대한민국의 정부가 수립된 것을 공포한 경축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제치하의 36년간의 생활은 너무도 굴욕적이고 비참하였다.

우리의 기본권을 박탈당하고 강제 노동과 강제징병·징용에 시달리며 우리의 역사·언어·문자까지도 탄압에 굴복 당하였다.

그뿐 아니라 심지어 이름과 성도 일본식으로 고치게 하였고 전쟁물자와 식량의 공급을 위한 각종 약탈을 감행하여 괴롭혔다.

이와 같은 온갖 탄압 속에서 조국 광복을 위한 지하운동을 맹렬히 벌렸으며 해외에서는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광복군 등의 조직에 의하여 항일 투쟁을 계속하였다.

한편 지난 1943년 11월 카이로 회담을 통하여 미·영·중의 원수가 모여서 우리의 독립을 밝혔고 1945년 7월의 포츠담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재확인하였다.

지난 1945년 8월 히로시마 나가사끼에 떨어진 원자탄의 위력에 놀란 일본은 그 달 15일에 무조건 항복을 하였으며 아울러 우리는 해방을 맞이한 것이다.

지난 1943년 11월에 미국·영국·중국의 3국 원수는 카이로에서 회의를 열어 일본의 영토 문제를 토의하고 카이로 선언을 하였다.

이 선언은 특히 한국을 독립시킬 것을 밝혔다.

1945년 7월의 포츠담 선언은 한국의 독립을 약속한 카이로의 결의안을 재확인하고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였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탄의 위력에 놀란 일본은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였다.

1945년 8월 15일은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한 날인 동시에 우리가 해방된 날이었다. 8·15 해방은 우리에게 곧 독립까지도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이북에는 소련군대가 진주하여 각각 군정을 펴려고 하였다.

남·북은 두 세력의 대립으로 인하여 화해하지 못하고 뜻하지 않게 국토와 민족과 사상이 둘로 갈라져 대립하게 되었다.

남한의 민주진영은 유엔의 협조를 얻어 전국민의 자유의사 대로 남·북을 통한 총선거를 실시하여 국토를 통일하고 주권을 회복하려 하였으나 소련과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이 반대하였다.

이에 유엔은 1948년 2월 가능한 지역부터 선거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1948년 5월 10일 유엔 한국위원단의 감시밑에 남한에서 역사적인 총선거가 단행되었다. 그 결과 국회가 소집되고 헌법이 제정되어 초대 대통령으로서 이승만 박사가 취임하여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자유민주의 국가로서 발족한 대한민국은 1948년 12월 파리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 받았다.

이 어찌 기쁜 날이 아닌가 ?

이날을 기리기 위해 우리 한국자유총연맹 충청북도지회에서는 20여년전부터 매년 도 지회는 물론 시·군지부별로 태극기 달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공휴일 개념으로 바뀌고 있는 광복절의 의미를 탈바꿈시키고 목숨을 바쳐 조국 광복을 위해 희생하신 선열들을 기리는 날이 되어야겠다.

요즘 일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한·미 fta 반대 촛불문화제라는 미명아래 이 나라를 전복하려는 기도가 있었다고 보인다.

그러나 지난 시간에는 세계 경제 강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한강의 기적과 서울 올림픽을 너무나도 잘 이루어냈다.

우리는 이번 8.15 광복 63주년을 계기로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면서 하나된 대한민국 !

한마음된 국민의 마음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유봉기 한국자유총연맹 충북도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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