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숙 열화당책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충청일보]266대 교황 프란치스코가 4박5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돌아갔지만 남긴 향기가 너무 진해 한국은 지금 교황앓이 중이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전혀 지치지 않았던 그는 우리가 오랜만에 만나는 군자였다.

겸허한 마음으로 가장 낮은 곳을 향해 희망과 위로의 손길을 내민 그에게 누구라서 반하지 않았겠는가.
 

종교를 떠나, 가는 곳마다 온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는 방한 기간 내낸 환하고 부드러운 미소, 따뜻하고 인자한 모습, 우리의 아픔을 공감하는 자세, 진심어린 강복으로 약한 자, 상처 받은 자들의 가슴을 어루만져 줬다.

왜 우리는 만백성의 어버이를 곁에 두고 멀리서 온 군주에게서 위로 받고 치유 받아야 하는가.

누군가가 우리는 참으로 가엾은 국민이라 했다.

국가가, 사회가, 위정자가 돌보지 않은 버림받은 민초라 했다.

로마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세월호 유족들 앞에서 중립적일 수가 없었다'고 고백한 교황, 사건 이후 냉혹하리만치 중립적인 대통령, 유족들의 아픔보다 당리당략만을 먼저 계산하는 정치인들, 국민들은 과연 누구에게 힘들고 지친 마음을 의탁하게 되는지 자명하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교황 신드롬'의 실체는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진리다.

그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의 도를 몸소 보여줬다.

검소한 생활과 따뜻한 인간애를 지닌 리더, 프란치스코는 동양의 군자가 지니는 덕목을 다 갖췄다.

그는 외유내강형이다.

일반인에게 친절하고 부드럽지만, 자신에게는 사제로서 엄격한 잣대를 댄다.

그는 변함이 없다.

교황은 군주와 같은 지위와 권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황이 된 후에도 자신이 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낮은 곳을 향한다.

국가 원수보다는 일반인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일반인을 만날 때는 되도록 오랜 시간 머무른다.

일반인과의 만남을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는 평화를 지향한다.

이것이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을 찾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의 신념은 평화이고 거기에는 타 종교와의 평화도 포함한다.

그는 종교와 유관한 무관한 모든 이들과 대화한다.

그의 핵심 메시지는 종교적 믿음 뿐 아니라 인간의 가치다.

그가 국적을 불문하고 노인·아이·빈민층에 주목하는 이유는 종교가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동등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신념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진정한 군자를 갈망한다.

위정자, 사회 지도층 인사 뿐 아니라 주위에서조차 군자를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성 계기로 삼아야]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고위공직자들의 비도덕적이고 비양심적인 행태는 우리에게 불신과 실망만 안겨준다.

우리 사회에도 그와 같은 사람이 있어 상처만 남은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를 기다라는 것은 백년하청(百年河淸)을 꿈꾸는 것과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됐는지 모두 스스로에게 되물어 봐할 시점이다.

이 모든 것은 남의 탓이 아니라 내 탓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