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우리 사회와 가톨릭교회에 큰 울림을 줬다. 그 울림은 메아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렁이는 파도처럼 우리 안에서 계속돼야 할 것이다. 교황의 방한은 한 번의 큰 행사가 아닌 우리 사회와 교회에 변화를 요구하는 강렬한 메시지였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교황의 메시지에 대한 의미를 해석하고, 그에 따른 구체적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나는 교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교회가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고 살아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한국 가톨릭교회는 열린 교회를 지향해 왔다. 특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쉽게 교회를 찾아 위로와 쉼을 얻을 수 있는 교회를 지향해 왔다. 그러나 교회 외부에서는 교회의 문턱이 높아져서 열린 교회는 말 뿐이라는 비판을 계속해 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이러한 비판에 대한 한국 가톨릭교회의 방향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마치 임마누엘 칸트가 인식에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하듯 완전한 방향전환이다. 열린 교회에서 찾아가는 교회로의 전환이다.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밖으로 나가는 교회'다.

그래서 교황은 "사제들도 거리로 나가라"고 요구했다. 폐쇄적인 교회가 아니라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받고 더럽혀지는 교회'를 지향하라고 말했다. 그분은 그것을 몸으로 살아가는 분이다. 교황청 밖의 사제 숙소를 거처로 삼았고, 누구보다 먼저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찾았다.

브라질 빈민가를 걸어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 가난한 이를 안아주고 그들에게 입을 맞추는 교황의 모습은 한국 가톨릭교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이후 한국 가톨릭교회는 철저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반성해야 한다.

소형차를 타고 작은이들을 소중히 여기며 아파하는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시는 교항의 모습을 현재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볼 수 있는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 정의를 지키라는 목소리에 '종북딱지'를 붙이는 현실에서, "세월호 유족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는 교황의 말씀을 교회가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교황 방한 이후에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없다면, 교황 방한은 결국 하나의 큰 행사로 그치고 말 것이다. 그리 되기를 바라고 교황이 방한 한 것일까?

/최정묵 청주시노인종합복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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