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명 충북도 동물방역팀장

[충청일보]우리 전통가요인 '황성(荒城) 옛터'를 들으면 쓸쓸하고 처연함을 절로 느끼게 해 준다.
 

화려했던 옛 궁성의 영화를 뒤로한 채 무너져 내린 성터를 상상하면 흥망성쇠라는 사자성어를 절로 떠오르게 해 준다.

세월 앞에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며, 변하는 세상 앞에서 허망하고 덧없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았다.
 

추석 전 날, 달빛을 벗 삼아 초등학교 교정을 거닐었다.

검은색 목조건물로 길게 서 있던 단층의 교사(校舍)는 신식 2층으로 바뀐지 오래고, 산처럼 크게 보이던 수양버들은 운동장 한쪽에 그대로 서 있지만 노쇠한 가지가 여기저기 부러져 수세는 예전보다 못했다.
 

한 때 전교생이 700명에 달했던 큰 학교였다.

일제 때 지은 교사가 부족해서 건물을 더 지었고, 그것도 모자라 목조교실을 허물고 2층 건물로 증축했다.

그 때가 이 학교의 가장 큰 전성기였다면, 지금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장장 9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지만 지금은 전교생이 십수명에 불과하다.

입학생이 부족해 폐교 절차를 밟는다고 하니 황량하게만 보인다.

농촌지역에 웬만한 초등학교들이 맥없이 처분된다는 소식을 들은 지 꽤 오래됐는데, 그나마 이 학교는 정말 오래 버틴 셈이었다.
 

달이 뜨지 않는 밤에는 초롱초롱 빛나는 별들이 별똥별이 돼 밤새 복두산으로 떨어졌고, 달뜨는 밤이면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던 운동장이었다.
 

올해도 추석을 맞아 예전처럼 보름달이 앞산 위로 둥실 떠올랐는데, 밤마다 동구 밖으로 몰려나오던 동무들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모두 성장하면서 모교를 떠나 도회지로 향했고, 그곳에서 새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키우는 버거운 삶을 살았다.

그래도 불과 수년 전까지 명절이면 새식구와 아이 하나 둘씩 업고와 마을이 들썩거렸는데 근년의 풍경은 너무도 조용하다.
 

아마 우리를 키우던 부모님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시면서 고향을 찾는 발길도 뜸해진 탓이리라.

한가위 보름달은 예전처럼 앞산 위로 떠올라 마을을 교교히 비추는데, 풍경은 마치 황성옛터를 바라보는 듯 못내 적막하고 쓸쓸하다.
 

하지만 다시 우리의 농촌이 예전처럼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꿈을 꿔 본다.

그런 꿈이 점차 현실로 바뀌고 있다. 젊은 농군들이 하나 둘 늘고,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에게도 귀농 바람이 분다.
 

농촌에서 삶이 고단하다고 하나 근본적으로는 자연 친화적인 삶의 질과 가치가 도시의 삶을 능가하는 본질을 깨달은 것이 연유가 아닐까 싶다.
 

때마침 유기농이 농촌의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오고 있다.

과거 농법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가치로 농촌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다.

그동안 삶의 경쟁 속에 양적 소득을 쫓는 동안 잃어버렸던 생명산업의 가치를 되찾는 운동이기도 하다.
 

어려운 과제이지만 유기농을 통해 우리 고향에서의 삶과 문화와 인정이 넘치는 옛 영화를 복원하는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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