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진실과 국익 중 어느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진실이죠." 

대답은 쉽고 빠르다. 답의 이유도 명쾌하다. "진실이 궁극적으로 국익에 기여하니깐요." 

이어지는 다음 대화도 마찬가지다.  

"전 아무런 증거도 없습니다. 그래도 제 말을 믿어주시겠습니까?"

"얼마든지요." 

불안에 떠는 제보자의 물음에 자신 있게 답하던 화면 속 PD는 자신들의 앞에 얼마나 힘든 싸움이 기다리고 있는지 미처 알지 못한다.

특히 언론과 대중마저 진실에 귀를 막고 저항할 때 느끼는 그 고립감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제보자'는 10년 전 "대한민국 모두와 맞섰던" 한 언론인의 집념 어린 투쟁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2005년 우리 사회를 뒤흔든 황우석 당시 서울대 수의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을 소재로 했다. 한학수 PD를 비롯한 MBC 'PD수첩' 제작진은 이미 성역이 돼 버린 황 교수의 논문 조작 의혹을 캐면서 전국민적인 비난에 시달렸다.

영화 속 NBS 방송국 'PD추적'의 윤민철(박해일 분) PD 역시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줄기세포 추출에 성공한 이장환(이경영) 박사의 연구 결과가 조작됐다는 제보를 받고 진실 추적에 나선다.  

영화는 추락한 영웅의 민낯을 까발리는 것보다 극중 적재적소에 배치된 인물들을 통해 진실을 대하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사실감 있게 보여주는 데 공을 들였다.  

방송사 고위간부는 "진위는 중요하지 않다. 국민이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윽박지르고 가방끈 긴 윤민철의 주변인들도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설마 줄기세포가 하나도 없겠느냐"고 되묻는다.

화면 속 내로라 하는 과학자들은 그 거대한 사기극을 방관하거나 혹은 그에 동조하고 이장환 연구팀원들은 "우리 중에 줄기세포를 실제로 본 적 있어?"라고 의혹을 품으면서도 진실에는 침묵한다.  

"누가 뭐래도 이장환 박사님 믿습니다"며 맹신하거나 경제적 이득을 운운하며 'PD추적'을 손가락질하는 대중의 모습도 낯설지 않다.

'제보자'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재미있다는 점이다.

결말은 정해져 있고 생명과학이라는 소재 자체가 대중적이지 않음에도 2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전혀 지루하지 않다.

윤민철에게로 공이 넘어온 것 같다가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장환에게로 다시 공이 넘어가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재미를 준다.

이장환 연구팀 출신인 심민호(유연석)가 윤민철을 만나 "처음부터 줄기세포는 없었어요"라고 고백하는 장면 등 여러 부분에서 스릴러물을 보는 것 같은 쫄깃함도 있다.  

임 감독은 군데군데 웃음을 배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찰을 지키는 스님이 연방 똑똑하다고 자랑했던 복제견 몰리가 실제로는 '동네 바보개' 취급을 받는 모습 등에서 관객들의 웃음이 터져 나온다.  

어떤 배역을 맡아도 제 옷을 입은 것처럼 연기하는 박해일은 물론이거니와 이경영도 선량함과 애국심으로 가득 찬 열정적인 과학자 모습 뒤로 세상을 기만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훌륭히 연기했다.  

박해일의 유일한 버팀목인 PD추적 팀장 역을 맡은 박원상의 연기는 자연스럽고, 요즘 충무로 대세로 떠오른 유연석도 고뇌하면서도 결국 신념을 지키는 심민호 역을 무난히 소화해 냈다.  

방송사 사옥 앞에서 항의 촛불집회를 벌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저 사람들이 처음으로 무서워지려고 그러네. 진실만 이야기하면 우리 편일 줄 알았는데…"라고 말하는 윤민철의 모습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임 감독은 "내가 초점을 둔 것은 언론의 자유, 우리 사회 진실을 파헤치는 한 언론인의 집요한 투쟁이었다. 또 이 영화는 거짓이 승리하지 못하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희생하고 애쓰는 사람들에 대한 헌사"라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10월 2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1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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