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각지의 문화유적이나 명승을 돌아다니다보면 가장 흔하고 쉽게 눈에 띄는 나무가 소나무다. 그 이유가 무언지 궁금해 하는 일본 친구들에게 나는 소나무가 옛 선비들의 굳은 절개를 상징하기 때문이라 설명하곤 한다.


 사육신 중의 한 사람이자 충청도를 대표하는 선비로 알려진 성삼문(成三問:1418 ~ 1456)이 읊은 다음 시조가 유명하다.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의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세종대왕을 도와 신숙주, 박팽년들과 함께 집현전학사로 훈민정음 창제에 기여했던 성삼문은 세종의 사망 후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정쟁이 일어나자 폐위된 단종에게 끝까지 충성을 바치다 세조에 의해 사형을 받게 되었다.


 흰 눈은 혹독한 세상살이의 고초를 상징하고, 시류를 추종하지 않는 고고의 경지를 소나무에 가탁해서 표현한 것이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불렀을 법한 가곡 '선구자'에서도 역시 소나무는 조국의 해방과 독립의 꿈을 향한 절절한 충심을 표상하고 있다.

이 곡이 나온 1933년은 일제의 찬탈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한일합방 이래 일제는 해마다 조선에 대한 식민통치를 강화하고 조선의 인민과 물자를 약탈해갔다. '선구자'는 이와 같은 절박한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소나무가 실제로 나라를 구한 적도 있다. 태조 이성계는 1392년 개국과 동시에 '금산법'을 제정해 도성 주변의 소나무 벌목을 전면 금지했다. 이유인즉슨 당시 소나무가 가장 중요한 건축자재였기 때문이라지만, 소나무가 해군의 함선을 건조하는 주요 재료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올여름 개봉된 영화 '명량'의 관객동원수가 1700만 명을 넘었다고 하는데 이순신 장군이 23전 23승이라는 사계사에 유례없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12척 뿐 남은 함선을 이끌고 '사필즉생'의 각오로 출전했던 장군의 투철한 애국심과 뛰어난 기량 덕분이겠지만 충돌과 포격에 약한 삼나무로 만들어진 왜선과 달리 조선수군의 주력 함선인 판옥선이 한번에 20발의 함포를 맞아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한 소나무로 건조된 까닭이었다.


 이토록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소나무가 최근 큰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한다. 일단 감염되면 100% 말라죽어 '소나무 에이즈'라 불리는 재선충의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 이대로 두면 한국의 소나무가 멸종될 수도 있다고 하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나마 위험지역 소나무의 이동을 막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한다. 조경수로 인기가 높아서 단속을 해도 불법 유통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험준한 역사노정을 민족과 함께 했던 소나무를 지키기 위해 각별한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 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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