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가을이 달려오고 있다. 가을은 들판, 산, 하늘 모든 것이 어여쁘지만 정신없이 잃어버린 시간으로 마음이 허전해지는 지금 두 개의 편지로 작은 위안을 삼아본다.
 

거의 10여 년 만에 받아본 것이 아닐까? 하나는 친구와 일본 홋가이도에 여행을 떠난 룸메이트의 편지이고 다른 하나는 정말 뜻밖의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김**라고 합니다. 아마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후배에게서 온 편지라 많이 당황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점 먼저 사과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얼마 전 충북교육소식에 실린 교장선생님의 시를 읽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실 요즘 집안에 힘든 일도 있고 학교에서도 아이들 문제로 힘에 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다시 지금이 시작이다'라는 교장선생님의 시를 읽고 군대를 전역하고 처음 아이들을 만났을 때가 떠올라 다시 한 번 열심히 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도 뵌 적이 없고 책에 실린 작은 사진으로만 보았지만 아마 교장선생님은 참 마음이 따뜻하고 희망적인 분이실 것 같습니다. 저도 언젠가 제가 쓴 글로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두서없이 무례하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바쁘신데 이런 사적인 편지를 보내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럼 날씨 더운데 몸 건강하십시오."
 

편지를 몇 번이나 읽고 만감이 교차했다. 요즘은 디지털 만연시대라 메시지나 카톡 등으로 마음을 던지고 마는데 낯모르는 후배의 편지라니 몇 십 년이나 기다려온 편지이던가! 편지의 멋은 무엇보다도 예상치 않은 순간에 받아보는 묘미가 크다. 또한 편지는 받는 사람보다 써서 보내는 편이 한 수 위에 존재한다. 편지를 쓰면서 우선 자신을 성찰하고 겸손과 희망에 사념이 닿아있기 때문이다. 후배의 그 용기가 빛나던 여름이었다.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해보니 아이들이 서로 서먹하고 일부 전학 온 친구들과 갈등이 있는 등 불협화음이 들린다고 선생님들이 걱정이다. 교장실에서 무슨 방법이 없나 궁리하다가 우선 아이들의 속마음과 관계를 알아야하기에 전교생을 모아 놓고 사과할 일이나 고마운 일 등 전 학년을 대상으로 딱 한 사람을 정하여 편지를 쓰기로 하였다.
 

갑자기 편지를 쓰라니 처음엔 당황하는 표정이더니 각 교실에 돌아가 편지를 쓰는 것을 살펴보자 모두가 진지한 자세로 변해 있다.
 

학급 반장이 걷어온 것을 읽어보니 놀린 것, 물건 숨긴 것, 별명 불러댄 것 등 대부분 용서해달라는 사과편지가 많았다. 한 가지 특징은 같은 반 친구를 넘어 저학년 고학년 간에도 사과, 격려 편지가 꽤 많은 것이다. 하나하나 아이들 모습을 상상하며 편지를 읽어보는 내 입가에는 미소가 감돌고 아이들이 더욱 사랑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다.
 

말로는 할 수 없었던 그냥 지나쳐 미안했던 일을 편지로 써주니 마음이 홀가분해졌을까? 바로 다음 시간부터 발걸음이 조신하고 교내가 조용하다.

/박종순 산외초 교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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