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주

필자가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조사한 결과 충북엔 22개 구곡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구곡과 구곡시는 중국 주자의 무이구곡과 무이구곡시에서 유래됐다.

따라서 구곡을 설정하면 구곡시를 짓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현재 구곡시를 볼 수 없는 것은 문집 편찬과정에서 제외 되었거나, 아니면 문집 편찬 이전에 망실되었거나 둘중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

'구곡리구곡'도 그 하나이다. '구곡리구곡'은 지금 충북 제천시 봉양읍 구곡리와 장담리에 사이에 설정돼 있다. 그런데 현지 주민은 물론 대다수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세월 따라 구곡을 아는 사람이 죽고, 전수되지 않아 그렇게 된 것이다.

필자가 '구곡리구곡'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5년경 정운오(鄭雲五)의 ‘직암집(直菴集)’을 통해서다. 우리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은 우구원이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복사해 알려 주었다. 정운오도 '구곡리구곡'의 설정자를 기록해 놓지 않았다. 근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기(又記)’에 기록돼 있는 구곡의 이름이 3개만 와전된 듯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남아있다. '구곡리구곡'의 현재 행정주소를 상구곡에 사는 엄기홍 이장에게 물어보았다.

제1곡은 나라의 스승이 배출되는 봉우리라는 의미의 ‘국사봉(國師峯,구곡2리)’이고 제2곡은 천마가 날으는 봉우리난 뜻의 ‘천마봉(天馬峯, 구곡2리)’ 으로 ‘철매봉’이라고도 부른다.

또 제3곡은 양(陽)이 높은 곳이라는 고양(高陽, 구곡2리), 제4곡은 눈·비 내리는 고개라는 뜻의‘설우현’(雪雨峴, 구곡1리), 제5곡은 요(堯)임금의 유풍(遺風)이 어린 골짜기라는 ‘요곡(堯谷, 구곡1리 요골)’이다.

제6곡은 거북 모양의 바위라는 뜻의 ‘귀암(龜巖,구곡1리 요골)’이요, 제7곡은 옥녀가 사는 봉우리란 의미의 ‘옥녀봉(玉女峰, 구곡1리 요골), 제8곡은 용모양의 바위라고 해서 ‘용암(龍岩, 연박리 습내)’, 제9곡은 긴 못이라는 뜻의 장담(長潭),공전리 장담)이다.

정운오는 9개 구곡의 이름에 걸맞는 의미를 나름대로 부여했다."칠곡(七曲)은 옥녀봉(玉女峯)이다. 꽃을 꽂고 물가에 나가 서 있는 것 같으니, 사람이 보기에 이름답게 보이니, 군자가 여기에서 여색(女色)을 멀리하라는 경계를 알 수 있다. 팔곡(八曲)은 용암(龍岩)이다. 푸른 물가 옆에, 흰구름이 숨어있어, 혹은 잠겼다 혹은 날았다 변화를 헤아릴 수 없으니, 이를 보면 벼슬에 나가고 산천에 거처하는(出處) 마땅함을 알 수 있다."

'구곡리구곡'은 제 8곡 용암과 제9곡 장담을 빼놓으면 산수가 수려하지 않다.

그러나 그 명칭에 담긴 의미는 심장하다.정운오는 '인걸이 있지 않은 것은 지세가 영험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고, 학문에 힘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금도 그렇다. 흔히 "스승의 질이 제자의 질을 좌우하고, 제자의 질이 스승의 질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학문자세와 학문방법이 학문 결과를 좌우한다.

논문은 학자의 학문적 얼굴이다. 구곡은 산수의 아름다움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학문의 자세와 학통의 중요성, 사람의 도리까지 깨닫게 해준다.

극서의 계절이 끝나가는 시기에 구곡과 그 설정자의 의도를 살펴보면 풍요로운 지적(知的) 가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