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충청일보]하나는 사회적으로 서민을 이르고 용(龍)으로 비유하면 잠룡(潛龍)에 해당하며 일에서는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고 사람의 나이로는 10대에 해당한다.

둘은 사회적으로 선비를 이르고 용으로 비유하면 견룡(見龍)에 해당하며 일에서는 생육기에 해당하고 사람의 나이로는 20대에 해당한다.

셋은 사회적으로 대부(大夫)를 이르고 용으로 비유하면 견룡보다 위에 자리할지라도 그 근거를 땅에다 두며 일에서는 성장기에 해당하고 사람의 나이로는 30대의 입지(立志)에 해당한다.

넷은 사회적으로 공경(公卿)을 이르고 용으로 비유하면 견룡보다 위에 자리할지라도 그 근거를 하늘에 두며 일에서는 성숙기에 해당하고 사람의 나이로는 40대의 불혹(不惑)에 해당한다.

다섯은 사회적으로 군주(君主)에 해당하고 용으로 비유하면 비상하여 하늘의 나는 비룡(飛龍)에 해당하며 일에서는 결실기에 해당하고 사람의 나이로는 50대의 지천명(知天命)에 해당한다.

여섯은 사회적으로 은자(隱者)에 해당하고 용으로 비유하면 돌아갈 자리를 찾는 항룡(亢龍)에 해당하며 일에서는 수확기에 해당하고 사람의 나이로는 육, 칠십대의 이순(耳順)에 해당한다.
 

한편으로는 인생은 꿈이 있기에 아름답고 희망이 있기에 의욕이 생기며 의욕이 있기에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지나치게 자만을 하거나 미래를 크게 설정을 하고 지나치게 의욕만을 앞세우다보면 허망한 계획을 세우기가 쉽고 허망한 계획은 허망한 만남을 구하며 허망한 만남은 허망한 것들을 구(求)하는 가운데에서 허망한 것들만 보는 것이다.
 

그래서 만남에는 어울리는 짝이 있다.

예를 들면 숲속의 새소리와 물소리가 어울리면 아름답고 꽃과 나비가 어울리면 그림과도 같으며 된장과 쑥이 어울려서 더욱 구수하여지고 국악과 한복이 어울려서 조화로운 것처럼 대소동정에 따라 서로가 감(感)하고 응(應)하면서 어울리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신의 지나친 욕심과 의욕 때문에 애써 피하려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까지 만남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만나야 할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만나야 할 때인지 아닌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애써 찾아다니기도 하고 달아나려는 사람을 애써 부여잡을 필요도 없으며 오겠다는 사람을 애써 막지도 말아야 한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만남 될 때에 서로가 진실 된 만남이 되고 진실 된 만남에서 동의(同意)를 구하게 되는 것이며 서로의 동의가 형성될 때에 두 사람이 함께 아름다운 성장을 보는 것이다.
 

이처럼 만남의 이치를 순리에 따라 행하는 사람은 부질없는 만남에서 연연해하지도 않고 부질없는 이별에 슬퍼할 이유가 없으며 오고가는 발걸음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꼭 만나야할 사람이 찾아오고 꼭 만나야 할 사람을 찾게 되며 꼭 만나야할 사람들끼리 함께 일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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