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회 행우문학회 회원

올 추석은 연휴가 길어서 인지 큰 사건 사고 없이 조용히 지나간 것 같다. 대체휴무제가 처음 시행돼 하루를 더 쉬다보니 5일의 연휴를 바쁘게 보냈다. 
 

어린 시절 그렇게 기다려지고 고대 하던 추석명절이지만 어른이 되고 부터는 마냥 좋지만 않다. 오랫동안 명절을 보냈는데도 음식을 할 때마다 한두가지 빠뜨리기도 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헤매기 일쑤다.
 

그래도 제사를 지내고 바로 친정에 가서 오랜만에 만나는 동생들과 사촌 형제를 만나는 기쁨이 있어 좋았다.
 

그런데 우리 집에 백년손님이 오고 난후, 30여 년 동안 했던 친정나들이에도 변화가 왔다.
 

시집간 딸이 친정이라는 내 집으로 백년손님과 함께 오기 때문이다.
 

시댁이 구례인 딸은 명절을 보내고 바로 올라온다. 작년 추석에는 두 식구가 왔었는데 올 추석은 세 식구가 온다. 딸이 임신해 예비엄마가 됐기 때문이다.
 

서툰 음식 솜씨여서 모처럼 집에 오는 딸과 사위에게 맛있게 먹이고 싶은데 마음만 분주할 뿐이다.
 

이런 나에게 보란 듯이 시어머님은 아픈 허리에도 손녀사위 먹인다고 이것저것 척척 준비하신다. 난 옆에서 상만 차릴 뿐이다.
 

평소에도 그렇고 큰일이 있을 때마다 음식을 척척 준비해주시는 어머님도 위로할 겸 명절 다음날 충남 금산에 있는 '하늘 물빛 정원'이라는 수목원엘 다녀왔다. 여행을 유난히 좋아하시는 우리 시어머님, 마냥 좋아하신다. 팔십이 훨씬 넘으신 연세에도 나보다 더 감성적이시다.
 

명절끝자락이라 관람객들이 참 많다. 정원은 꽃과 나무들을 잘 꿔어져 있었다. 입장료는 없었으나 우리 밀빵 등 먹을 것들이 우릴 유혹했다.
 

이미 명절 음식을 먹은 터라 색다른 것을 찾아보니 화덕에 피자를 구어 주는 곳이 있었다. 피자와 샐러드를 주문해 맛있게 마음껏 먹으라고 하자 우리 어머님 옆에서 돈 많이 쓴다고 걱정이시다. 오늘 만큼은 돈쓰는 것도 행복하다. 고맙고 고마운 시어머니가 계시고, 마냥 이쁘고 사랑스러운 딸과 사위에게 쓰는 돈이니 그럴 수밖에….
 

어머님은 내일 경로당에 가서 오늘 일을 자랑하신다고 하시면서 수목원 이름을 외우시기 바쁘다. 몇 번 알려드려도 잘 안 외워지나 보다.
 

나도 건망증이 심해 기억을 잘 못하는데 오죽 하실까.
 

딸이 없는 어머님은 손녀사위가 너무 좋다며 만날 때 마다 볼을 만지며 반긴다. 표현을 잘 못하는 나는 맘속으로만 사랑을 표현할 뿐이다.
 

수목원에서 사온 빵을 먹으며 살아가는 이야기는 나누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세대 간의 차이도 느끼지만 젊은 아이들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들 어떠랴, 오순도순 마주 앉아 있는 거만 봐도 좋다. 남들이 사위는 백년손님이고, 며느리는 백년 하인이라 하지만 난 백년손님이라도 좋다.
 

아들이 하나 더 생겨 좋고, 우리 아들에게는 형이 생겼으니 이 보다 더 무얼 바라겠는가. 내년에는 예쁜 손자를 내 품에 안을 생각에 지금부터 맘이 설렌다.
 

퇴근길에 길옆 상점에 진열된 아이의 옷을 바라보노라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내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김복회 행우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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