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북한 최고위급 인사들의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을 계기로 조성된 남북관계 개선 움직임을 바라보는 미국의 기류는 복합적이다. 

경색된 남북관계가 풀리고 한반도 긴장국면이 완화되는 것은 환영하지만, 근본적 이슈인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의미 있는 관계개선은 어렵다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미 국무부는 3일(현지시간) 밤 논평을 내고 "남북관계 개선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정부 내부의 판단이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원론적 입장 표명이기는 하지만, 남북 고위급 접촉 재개를 환영하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이번 주초 외교채널을 통해 우리 정부로부터 남북 고위급 접촉과 관련한 설명을 청취할 예정이고, 방한한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6일 우리 외교부 고위당국자들과 만나 더 상세한 내용을 전해들 것으로 예상된다.

오바마 정부는 그동안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및 통일구상에 긍정적 반응을 보여왔던 만큼, 이번에 남북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우리 정부를 지지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 최고위급 인사들의 방남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며 "박근혜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지지해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오바마 행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서 제시한 대로 작은 단계를 밟아가며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가 중동과 우크라이나, 에볼라 등의 긴급 현안에 대처하는 데 여념이 없어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를 주도해나가는 데 특별한 이의를 달지 않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더글라스 팔 카네기국제평화연구원 부회장은 "만일 남북 간에 새롭고 가치 있는 변화가 일어난다면 미국이 한국과 본격적 협의를 하려고 할 것"이라며 "그러나 현재로서는 한국이 남북관계 개선을 주도하고 책임지는 것을 미국이 지지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우리 정부가 추구하는 남북관계 개선의 방향과 속도에 일말의 경계심도 표출되고 있다.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지 않는 북한과 근본적인 관계개선이 쉽지 않으며 자칫 북한의 '초점 흐리기' 전략에 말려들 수 있다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보수 성향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연구원은 "북한 고위급 인사들의 이번 방한은 남북한 간의 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초점을 흐릴 수 있다"며 "한국이 핵과 미사일을 거론하는 것은 남북관계를 저해하는 것처럼 잘못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미국 정부 내의 많은 사람이 이번 방한을 기쁘게 생각하지만, 한국이 북한을 다루는 데서 좀 더 책임감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이번 방한이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초점을 맞춰온 정책에 차질을 주지 않을까 경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그는 "이번 방한은 한·미관계에 균열을 일으키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이번 방한이 남북 고위급 대화재개의 모멘텀을 제공하기는 했으나 양측의 모호한 태도로 미뤄볼 때 실질적 관계 진전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며 "특히 북·미관계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징후는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일본에 이어 한국까지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꾀하면서 한반도 정세의 전환 과정에서 미국이 '고립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엘 위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는 "남북관계가 진전된다면 6자회담 재개에 전제조건을 단 미국이 갈수록 고립화될 것"이라며 "한·미·일 3국이 입장차를 좁히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하겠으나 한국과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에 진전을 이룬다면 여의치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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