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예산 추사고택에 가는 김에 멀지 않은 농가맛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아침 일찍 예약을 했다.
 

고속도로에서 나온 뒤 좁게 포장된 논두렁 옆길로 가다 간판도 없는 가정집 같은 식당에 도착하니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예약 손님만 받는다는 이 식당에 그날 점심 손님은 우리 부부뿐이었다.
 

인원이 정해지면 그에 맞게 식재료를 준비해서 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미리 예약한 손님만 받을 수밖에 없어 근처 예산 저수지나 수덕사에 왔다가 바로 식사하러 오겠다는 전화가 와도 손님을 받아주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니 아무 때나 들어가도 바로 식사가 나오고 먹자마자 바로 일어서는 요즘 식당문화와는 대조적이다.
 

할머니는 손님 적은 것을 서운해 하지 않고 우리를 활짝 웃으며 맞으시며 "바쁘세요? 오늘은 오직 두 사람만을 위한 상이니까 천천히 드시고 편히 머물다 가세요" 하신다. 그리고는 집터 연못에서 자란 연잎에 싸서 쪄낸 푸짐한 돼지수육에 박 잎을 곁들여 놓으시고 꽃게탕에다 장아찌들과 막 무친 야채 반찬들도 듬뿍듬뿍 담아주시는가 하면 밤이랑 콩을 넣은 잡곡밥을 좋아할지 모르겠다며 잡곡이 적은 부분을 뜬 밥 한 그릇을 더 갖다 주시고 먼저 끝낸 반찬 접시는 어느새 다시 채워주신다.
 

상이 나오기 전 할아버지는 조금 멀찍이 앉으셔서 근방에 가볼 곳이나 시골생활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하시다가 식사가 나오자 일어나시기에 자리를 피해주시는 줄 알았는데, 좀 있다 보니 정원에서 배, 감, 대추들을 한 봉지 가득 따가지고 오신다. 할머니는 과일 몇 개를 가져다 깎아 한 접시 푸짐하게 담아 내오시고 이미 너무 배가 불러 푸짐한 과일을 다 먹지 못하고 있자 "커피 마실래요?" 하시더니 직접 원두커피를 내려주시겠다며 주방으로 가시더니 커피를 내려 내오신다.
 

정성스런 식사를 대접받고 일어서자 할아버지는 직접 따온 커다란 배 세 개, 줄기 채 꺾어온 단감들과 굵은 대추가 담긴 비닐 주머니를 가지고 가라고 손에 들려주신다. 처음에는 손님도 없는 식당에 괜히 왔나 걱정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주인 내외분의 따뜻한 대접을 받으니 식당에 온 게 아니라 주인집에 초대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더 싸고 맛있는 식당 혹은 더 고급스러운 음식점도 다녀봤지만 이번처럼 귀한 손님대접을 받아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하던 주방일도 멈추고 손을 닦고 나오신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내외분이 차가 떠날 때까지 지켜보시는 눈길의 배웅을 받으며 한 봉지 챙겨주신 직접 키운 과일을 싣고 추사고택으로 향했다.

/황혜영 서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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