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18호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의 훼손이 심각하다. 처마 밑 부분이 썩고 우아한 배흘림기둥 일부에 금이 가고 벽체가 벗겨졌다.

화재 피해를 막기 위해 문화재청이 지난 2004년부터 목재에 방염재를 뿌린 후부터 목재가 크게 상하기 시작했다. 국보 24호인 경주 석굴암도 불상이 앉은 대좌부와 천장에 금이 갔다. 국보 31호인 경주 첨성대에는 균열이 일어났고 이끼로 색이 변했다.

국보와 보물, 사적, 천연기념물 등 문화재 1683건이 구조적 결함이나 즉각적인 보수 정비가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2월부터 6개월간 야외에 노출돼 훼손 위험도가 큰 지정문화재 7393건을 점검한 결과다. 보존 대책이 요구되는 문화재가 5개 중 1개꼴이다.

128건은 소방 설비도 미흡해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그만큼 문화재 관리가 부실했다.  우리는 지난 2008년 국보 1호인 남대문을 잃었다. 다시 복원한 건물의 단청이 벗겨지면서 부실 논란에 휩싸였다.

전통방식 대신 물감에 화학 안료와 접착제를 넣었기 때문이다. 총책인 대목장은 금강송을 빼돌리기도 했다. 오는 2018년 이후 재복원을 시작한다고 하나 재정적 부담은 어찌하며, 제대로 복원이 된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가시적인 행사 위주에 치중하는 현 문화정책으로는 문화가 융성해지지 않는다. 거기에는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나 문화재 관리와 같은 내실이 부족하다. 당국의 관리 소홀은 질책 받아 마땅하지만, 국민들의 문화재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져야 한다.

만지거나 기어오르거나 낙서를 하는 등 문화재를 대하는 기본적인 소양이 부족하다. 국민 총생산량이 높다고 선진국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문화가 높은 수준이 높을 때 비로소 선진국이 된다.

정부와 국민의 선진의식이 선진국을 만든다. 신축된 지 몇 달 되지 않은 광화문 현판도 금이 가서 부실 논란이 있었다. 현판은 해당 건축물의 역사일 뿐  아니라 당대의 역사와 예술을 대변한다.

한호, 이광사, 김정희 등 조선의 명필들도 명소에 현판 글씨를 남겼으며, 조선의 왕들은 물론 이승만, 박정희 등 근대의 대통령들도 곳곳에 글씨를 남겼다. 필자는 요즈음 전국의 현판을 답사 중이다. 지난주에는 한옥이 아름다운 안동 하회마을을 찾았다.

그곳의 개인 한옥들은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었다. 유교의 고장답게 풍천면 병산리 유교문화길에 어락정(魚樂亭)이 있다.

기록에 의하면 거기에는 안동 김씨 후손인 일중 김충현이 쓴 어락정 현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판은 사라졌고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는 아름다운 정자는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었다.

그것은 안동 김씨 문중 소관이라는데, 문중에서 대대로 내려온 건축물에 어찌 이리 무심할 수 있을까. 공공기관이나 가문이나 문화재 관리는 부실 그 자체다.

문화재 관리는 일회성이 아니라 충분한 예산과 관심, 그리고 뚜렷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시행돼야 한다. 후손에게 물려 줄 것은 정신문화의 산물이어야 하며, 문화재는 선조가 남긴 정신문화의 표상이다.

/정현숙 열화당책박물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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