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에 문자가 왔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 문자를 확인하니 중학교 동창의 여혼을 알리는 청첩장이 들어 있었다.

참 좋은 세상이다. 주소도 필요 없고 핸드폰 번호만 있으면 되는 세상이다.

가을 햇살이 따사로운 날 예식장에서 38년 만에 중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아는 얼굴과 가물가물 떠오르지 않는 얼굴 속에 세월의 흔적들이 묻어났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들은 학창시절의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체육선생님 이야기가 나오고 내가 체육선생님한테 무지하게 혼났던 기억까지 들춰졌다. 나 말고도 그 사건을 기억하는 친구가 또 있었다.

지금도 먹먹해지는 가슴 아픈 그 기억….  어릴 적 나는 가난이 철철 흐르는 시골에서 칠남매의 맏이로 태어났다. 내게 중학교 입학은 먼 남의 이야기였다. 집안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중학교에 가고 싶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농사일을 도우며 지냈다.

윗동네 친구들이 교복을 입고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속울음만 삼켜야했다.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갖은 우여곡절 끝에 중학교를 가게 됐다. 입학을 해 2년 후배들과 함께 공부를 했다. 나이가 어리면 어떻고 언니대우를 못 받으면 어떠랴 공부만 하면 되지. 학년별 체육대회가 열렸다. 여러 가지 종목이 있었는데 투포환 던지기를 했는데 내가 제일 멀리 던졌다. 시골에서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시내 애들보다는 팔 힘이 세었나 보다. 그 실력을 보고 체육선생님이 날 보고 육상을 하라고 했다. 그것도 투포환을…. 몇 번을 운동장으로 나오라고 했는데 가지 않자 화가 난 선생님이 오셔서"엎드려 뻗쳐"를 하라고 했다.

난 하라는 대로 했다. 몽둥이가 사정없이 날아왔다. 이를 악물고 '죽어도 운동은 못합니다' 라고 소리쳤다. 내가 어떻게 중학교를 왔는데, 나보고 운동을 하라고 하는가! 그때만 해도 육상선수들은 수업시간에 들어오지 않고 거의 수업을 받지 않았다.

공부가 사무치도록 하고 싶어서 입학한 나에게 투포환을 하라고 하는 선생님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엉덩이가 퉁퉁 붓도록 때린 선생님은 그 후 다시는 날 찾지 않으셨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교복을 장롱 속에 넣어 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바라보기도, 꺼내 입어보기도 했었다.

반 편성 고사를 보기 위해 처음으로 가본 중학교는 지대가 높은 곳에 있었고 2층 건물이었다. 교실에 들어가서 맨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시간표였다. 시간표에는 초등학교에서 없었던 영어라는 과목이 있었다.

이제부터 나도 다른 나라 말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뒤 늦게 시작해 나이 어린 친구들과 공부를 하면서도 마냥 좋았다.

어려운 살림에 옷을 사 입을 수가 없어 어디를 가든 난 교복을 입고 다녔다. 친구들은 사복을 멋지게 입고 다녔지만,  사복보다 교복이 더 자랑스러웠다. 그렇게 입고 싶어 울었던 교복이지 않은가.

예식장을 다녀와서 그 시절 교복이 그리워 중학교 앨범을 꺼내본다. 앨범 속에서 자랑스러운 교복을 으스대며 보란 듯이 웃고 있는 단발머리 중학생이 보인다. 먹먹한 가슴 꿈 많던 시절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김복회 행우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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