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부터 3일간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세계인문학포럼이 열렸다. 프린스턴대학교 이창래 교수, 하버드대학교 갤리슨 교수, 뉴욕과학아카데미 CEO 루빈스타인 회장 등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 세계의 석학들의 강연을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 중에는 중·고등학생들도 많았다. 이 강연은 훗날 이들이 경험할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는 중요한 안목을 제공해 줄 것이라고 대견해 하면서, 나도 앞자리를 찾아 앉았다. 아름다운 사물의 혼돈, 아날로그적 존재에 대한 생각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이창래 교수의 강연은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매스미디어의 생생함과 사이버 속의 상호교류가 가능해진 오늘날의 첨단 과학기술의 힘을 놀라워하면서도 이로부터 상실돼 가는 인간성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기술발달의 덕분에 사건을 더 잘 자각하고 거의 실제처럼 경험하지만, 과연 이러한 발달이 개인의 삶 속에 있는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를 더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을 줬는가?"라는 의문이 강연의 화두였다. 갤리슨 교수도 과학기술 생산시대에 인간의 프라이버시는 침해당하고, 핵폐기물로 인한 환경오염의 문제가 심각해지는 부작용에 초점을 맞춰 강연했다.

이태수 서울대 명예교수도 과학기술의 발달로 유전자 조작을 통한 인간 제조가 가능해짐을 경고하고, 지능의 향상, 외모의 향상 등을 통해 무한 경쟁 사회에서 질주하는 포스트휴먼의 기괴한 모습을 묘사하면서 스스로 노력하는 과정 없이 공학적 처치로 얻게 되는 산물은 인류의 절멸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 고등학생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인문학은 왜 필요한 겁니까?" 어린 학생들에게 과학기술의 발달은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았던 시대의 삶에 대한 경험을 가진 인문학자들에게는 지금의 변화가 그리 달갑지 않을 수 있다.

그들은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성을 피폐하게 만들 것이라는 시각을 고집스럽게 가지고 있다.  그 시대가 좋았던 사람들도 있겠지만, 미래가 된다면 지금의 시대가 좋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길 것이다. 시대의 변화는 인간에 의해 선택된 것이다. 우리가 다시 전기가 없는 과거의 호롱불과 우마차 시대로 간다면 인간성을 더 깊이 고찰하고 회복할 수 있을까? 질주하는 과학기술 시대에 맞춰 과거와 다른 새로운 인성을 추구하고, 어린 학생들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인성을 가지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질주하는 과학기술 시대에 맞는 인성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인문학자들의 성찰이 아쉬운 시간이었다.

/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