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자유와 평온을 누가 지켜 줄 것인가? 오로지 마음 가운데에서 빛나는 고요의 빛이요 희망의 빛이요 안도의 빛이다. 이것은 현실이다. 마음은 이상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요 현실 그 자체다. 마음이 지극한 현실 속에서 노닐 때에 망아지 같았던 망념(妄念)은 차츰 고요 속으로 숨어들고 화려했던 잡념(雜念)들도 차츰 한가함 속으로 숨어든다. 그러나 생각은 생각의 끝을 부여잡고 하루 종일 머리 속에서 방황을 했건만 자신의 가는 길조차도 볼 수가 없으니 오로지 마음속에 고요의 보석만이 망념과 잡념으로부터 마음을 지켜 주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의 기운이 아래로 향해 있고 땅의 기운이 하늘로 통하니 그 가운데에 서 있는 하나의 모습이 있다. 그것은 빼어난 아름다움이고 훌륭한 자태이며 품위 있는 성품이다. 무엇에도 하나의 마음을 쉬이 주지 아니하고 무엇에도 하나의 생각을 쉬이 옮기지 아니하며 어떤 것보다도 한결같은 마음이고 어떤 것보다도 주인을 섬기는 생각이다. 이것은 현실적인 부귀공명에도 마음을 주지 않고 현실적인 빈천 고통에서도 빼앗기지 않는 마음이요 생각이 경(敬)이다. 그래서 경(敬)은 훌륭한 아름다움이 되고 품위 있는 자태가 된다.

무릇 사람의 관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의 마음과 생각을 서로가 지켜야 하고 서로가 간직을 해야 하는 것이 이치가 되련 만은 사람들이 함께 모였다가도 서로가 쉽게 흩어져 가는 까닭은 서로에게 헛된 것을 원하고 서로가 서로의 헛된 것을 섬겼기 때문에 쉽게 모였다가 쉽게 흩어져 간다. 한편 천지간(天地間)에 존재하는 만물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그것들을 필요한 조치로서 서로를 서로가 지켜보는 관찰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천하가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도 천하가 돌아가는 이유가 무엇 일까?의 문제가 있고 천지자연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문제보다도 천지자연은 왜 존재를 하는가의 문제가 있으며 사람이 어떻게 구하고 얻느냐? 하는 문제보다도 왜 존재의 가치가 생기느냐의 문제가 있다.

그런 연후에 어떻게 존재의 가치를 존속하고 발전을 시켜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여기에서 먼저 존재의 당위성을 밝히고 존재의 창조성을 밝힌다면 저절로 방안은 생겨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존재의 당위성에도 관여하는 이치이고 창조성에도 관여를 하는 이치이며 방안을 설정할 때에도 관여를 하는 것이 바로 경(敬)의 이치다.

그래서 경(敬)은 존재의 훗날까지도 자신을 지켜주는 수호자가 되고 정념(正念)은 그것의 양분이 되며 발념(發念)은 그것의 씨앗이 되고 무념(無念)은 그것의 모태가 된다. 그러므로 경(敬)을 간직하기 위해서는 정념(正念)을 기둥으로 삼는 것이고 정념을 세우기 위해서는 좋은 발념(發念)을 씨앗으로 삼는 것이며 좋은 발념(發念)을 얻기 위해서는 맑은 무념(無念)을 토양으로 삼는 것이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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