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혜영교수
팩션(faction)은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합성한 신조어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새로운 시나리오를 재창조하는 문화예술 장르’를 지칭한다.
얼마 전 아는 분을 통해 이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원래 소설의 한 장르로 시작한 팩션이 이제는 영화·드라마·연극·게임·만화 등 모든 문화예술 장르로 확산되고 있다.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던 ‘다빈치 코드’나 우리나라의 ‘영원한 제국’‘불멸의 이순신’같은 역사소설과 사극드라마, 왕의 남자’와 같은 영화들이 실존인물과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가미하여 만든 팩션이다.
팩션은 사실을 드라마틱하게 변형하여 흥미와 감동을 주는 반면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아 사람들에게 변형된 역사를 사실로 믿게 만들거나 혹은 진실에 대한 불신을 가져올 수 있다.
실제와 가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은 이야기 뿐만 아니라 표현방식에도 볼 수 있다.
예전 영화들에서 보여주는 장면들은 카메라로 직접 촬영한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실제 사진과 그래픽을 합성하여 자유자재로 영상을 창조해낸다.
그래픽 덕분에 실제로는 불가능한 장면들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화면은 더욱 웅장하고 화려해졌다.
1895년 최초로 영화가 상연되었을 때 기차가 역에 들어오는 장면을 보면서 관객들이 영상을 현실로 착각하여 놀라 테이블 밑으로 숨거나 밖으로 도망치려 했던 것과 흡사하게, 처음 그래픽이 도입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래픽을 실제 사진으로 여기고 그 위력에 고스란히 매료되었다.
이제 관객들은 웬만한 환상적이거나 스펙터클한 장면들에서는 으레 그래픽이리라 짐작한다.
화면은 더 섬세하고 화려해졌지만 관객의 가슴에 남는 여운은 점점 더 옅어지고 있다.
허구가 사실에 파고들기 시작하면서 사실 자체가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전 세계에 생방송으로 방영된 북경올림픽 개막식 장면에도 그래픽이 들어갔다 하여 논란이 되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하였으나 앞으로는 직접 눈으로 보는 것도 의심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에 허구를 가미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 속에도 깊숙이 파고들어와 있다.
사진을 예로 들면 포토샵으로 실제 얼굴에서 잡티를 제거하고 피부 톤을 바꾸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눈 크기나 얼굴형도 바꾸기도 하고, 몸매도 원하는 대로 고쳐 새 사람으로 만들어 어디까지가 본 모습이고 어디까지가 가공된 것인지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증명사진 한 장에서도 팩션이 보인다. 또 수많은 자료들을 클릭 한 번으로 퍼올 수 있는 인터넷 시대에 나의 글과 남의 글을 손쉽게 섞게 되었다.
자신의 목소리에 남의 목소리를 표가 나지 않게 붙여내는 것도 일종의 팩션이 아닐까?
컴퓨터 스위치를 끌 때 화면과 함께 사라졌다가 스위치를 켜는 순간 다시 빛으로 드러나는 가상의 공간에서 아바타와 닉네임으로 활보하는 영역이 실제 현실 생활 못지 않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가고 있는 요즘 우리 삶에서도 실제와 가상은 함께 녹아 있다.
가상공간에서 우리는 원래 나와 상관없이 내가 꿈꾸고 상상하는 모습대로 탈바꿈할 수 있다.
또 마찬가지로 이름도 얼굴도 드러나지 않은 익명의 타인들과 함께 소통하고 삶을 나눈다.
가상과 현실을 끊임없이 넘나드는 우리의 삶 자체가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구분이 불분명한 팩션이 되어 가는 것 같다.
팩션으로 된 작품들이 허구를 사실로 착각하게 하고, 사실도 의심하게 만들기 쉽듯이, 현실과 허구가 섞인 사진, 남의 글과 내 글이 섞인 글, 익명으로 포장된 가공의 아이디들도 어쩌면 진실에 대한 불신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진실에 대한 신뢰의 회복, 팩션 문화를 보며 떠올려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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