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이여. 공직자들의 부정청탁과 솜방망이처벌을 막아 보자는 '부정청탁금지법'을 제정하는데 이리도 힘이 드는가. 공직자가 100만 원 이상의 금품을 받으면 대가성 여부에 관계없이 형사처벌하자는 '김영란법'이 갈수록 뒤틀리고 있다.

이러다간 쭉정만 남는 속빈 청탁금지법이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를 거치면서 다듬고 다듬어서 3년 전 입법예고 된 이 법은 국무총리와 장관들의 숙의를 거쳐 지난해 8월 국회에 제출됐고, 세월호 사태가 터진 이후 관피아척결을 주창한 박근혜대통령이 수차례 조기입법을 촉구했는데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뭉개고 있는 바람에 지금껏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위원장 정우택)는 올 상반기에 찔끔 보다 덮어둔 김영란법을 이번 주 부터 다시 심의에 들어간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새해 예산안 파행으로 인해 첫날부터 논의가 무산됐다. 게다가 정부입법 제안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가 며칠 전 다시 수정한 절충안이 당초 안보다 크게 후퇴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논란은 더욱 가열되는 상황이다.
 

이 법의 핵심은 고위공직자들의 비리를 척결하고 깨끗한 정치풍토를 만들어보자는 것이 주 목적이다. 그러나 국민권익위원회 절충안을 들여다보면, 부정청탁의 예외 사유를 4가지에서 7가지로 늘었다. 또 부정청탁을 받은 공직자의 의무신고 조항도 임의신고로 바꾸는 등 아쉽게도 원안에서 크게 후퇴했다.

물론 부정한 청탁인지 통상적인 행정민원인지 애매한 경우가 있고,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가 정상적인 공무활동을 저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있을지도 모를 사안을 지레짐작하는 지엽적인 논란에 가려져 이 법안의 본질을 퇴색시키려는 악의적 의도는 용납될 수 없다. 공직사회에 만연된 관행적 부패와 관피아로 압축되는 관료중심 온정연고주의 유착 폐해는 이미 국민들의 지탄을 받아 온 지 오래됐다.

우리나라의 국가청렴 수준(부패인식지수)은 세계 46위로 10여년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태국, 부탄, 부루나이 같은 개도국이나 저개발국가 수준이다. 각종 집단별 부패인식도 조사에서 나타나듯이 청렴후진국이 된 가장 큰 원인은 정치권의 비리 때문이다.

세월호 재난사태의 원인은 바로 정치권력과 뒤얽힌 공직사회의 부정부패 때문이 아니었던가. 예를 들기도 부끄럽다. 다시 강조하건대 부정한 금품을 수수하면 대가성에 관계없이 형사처벌해야 하는 김영란법은 연내에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 부작용이 생기면 그때그때 개정해도 된다.

/김덕만 청렴윤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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