琴兒 피천득 선생 별세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인연` 중)


25일 타계한 금아(琴兒) 피천득은일상의 평범한 소재를서정적이고 섬세하면서도간결한 문체로 풀어낸한국 수필문학계의 대표 작가다.

# 순수 간직한 `국민 수필가`

대표작 `인연`은 자신이 열일곱 되던 해부터 세 차례 접한 일본 여성 아사코와의 만남과 이별을 소재로 한 것으로, 교과서에 실린 이 작품을 읽고 자란 세대들에게는 설렘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첫 사랑의 대명사가 됐다.

2002년에는 수필의 실제 주인공인 아사코를 소개하는 내용이 국내에서 방송됐을 정도였다.

수필가, 시인, 영문학자의 삶을 산 그는 1910년 5월29일 서울에서 태어나 중국 상하이(上海) 공보국 중학을 나와 호강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수필가로 유명한 그의 문학 입문은 시가 먼저였다.

1930년 신동아에 시 `서정소곡`으로 등단한 뒤 잡지 `동광`에 시 `소곡`(1932)등을 발표했다.
1947년 첫 시집 `서정시집`(1947)을 출간한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 수필가`로 불릴 정도로 수필을 통해 문학적 진수를 드러냈다.

춘원 이광수가 거문고를 타고 노는 때 묻지 않은 아이의 마음을 닮았다고 붙여준 호 금아(琴兒)처럼 그는 딸 서영씨가 어릴 때 갖고 놀던 인형을 목욕시키고 머리를 묶어주는 등 인형놀이를 하는가하면 흠모하는 작가인 바이런, 예이츠의 사진과, 자신이 `마지막 애인`이라 불렀던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먼의 사진을 가까이 두는 소년의 모습을 간직했다.

# 딸 향한 각별한 父情

그의 딸에 대한 사랑은 유별났다. 수필작품을 통해 여러번 딸의 이름을 부르며 부정(父情)을 나타냈다.

"서영이는 내 책상 위에 `아빠 몸조심`이라고 먹글씨로 예쁘게 써 붙였다. 하루는 밖에 나갔다 들어오니 `아빠 몸조심`이 `아빠 마음조심`으로 바뀌었다.

어떤 여인이 나를 사랑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랬다는 것이다. (중략) 아무려나 서영이는 나의 방파제이다. 아무리 거센 파도가 밀려온다 하더라도 능히 막아낼 수 있으며, 나의 마음 속에 안정과 평화를 지킬 수 있다."(`서영이` 중)

그의 문학관은 자신의 글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인생의 "아름다움" "인간 본연의 의지와 온정"의 문학이었다.

그의 삶은 작가의 문체처럼 소탈하고 검소했다. 술과 담배는 평생 하지 않았고 산책과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으며 화려한 장식품 하나 없는 작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 소박한 인생관, 욕심 없는 삶

소박한 인생관을 가진 그는 지인들에게 자신의 사후에 대해 작은 바람을 말한 적이 있다.

"죽어서 천당에 가더라도 별 할 말이 없을 것 같아. 억울한 것도 없고 딱히 남의 가슴 아프게 한 일도 없고 …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을 볼 때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참 고맙고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이 사람, 사랑을 하고 갔구나` 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는 게 욕심이라면 욕심이죠. 그것도 참 염치없는 짓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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