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유성구소식지로 유성 성암미술관을 알게 됐다.
 

마침 올 마지막 기획전 '조선시대 민화전'이 끝나기 전이라 다행히 전시를 보게 됐다. 가보니 큰길가가 아니라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미술관이고, 2~3층 전시실의 작품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큐레이터가 작품 하나하나에 관한 이야기들을 자상하게 소개해줘 무심히 지나칠 뻔했던 작품들 속에 숨겨진 보물들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었다.
 

성학십도, 백동자도, 호렵도, 풍속도와 신선도 등 다양한 주제의 전시 작품 모두 전문적인 화가나 문인이 아닌 무명화가들이 모사한 것들로 그중 병풍그림들이 많았다.
 

주로 선비들 방의 병풍에 그렸다는 '책가도' 속에는 쌓인 책들 곁에 각각 길한 의미를 상징하는 사물들이 함께 있다. 발음이 '평'자와 같아 평화를 상징한다고 하는 병과 나쁜 기운을 쫓아준다고 하는 해태가 있는가 하면 좋은 기운을 지녔다고 여겨지는 부처의 손을 닮은 열매 불수감과 장수를 의미하는 복숭아, 풍요를 기원하는 석류도 책 곁에 있다.
 

모르고 보면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은 각 사물들이 알고 보면 어느 것 하나 쓸모없이 놓인 것이 없고 제각각 그것이 지닌 좋은 기원으로 빛을 발한다.

'근역강산 맹호기상도'는 예전에도 봤지만 그때는 단순히 호랑이 모양의 지도를 재미로만 봤는데 이번에는 일본 학자들이나 어용학자들이 우리나라 지도를 토끼 모양으로 그려 우리민족의 자존감을 낮추고자 한 것에 저항해 지도를 용맹한 기상의 호랑이 모양으로 그림으로써 우리 국민들에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키고자 한 의미가 새롭게 와 닿았다.

'곽분양행각도'의 주인공 곽자의라는 사람이 중국에서 오복을 누린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꼽힌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오래 살고, 부유하고, 건강하고 편안하고, 덕을 좋아하고, 목숨을 살펴서 마치는 오복의 의미 특히 목숨을 살펴서 마치는 것에 대해 음미해보게 됐다.
 

평양성전도는 성안에 모여 있는 무수한 집들과 성 밖 들판에 드문드문 집들이 흩어져 있는 마을 풍경, 평양 아니랄까 봐 기생까지 줄줄이 따라오고 있는 어느 벼슬아치의 행차, 대동강이 내려다보이는 평양성 동쪽 밖의 산자락 정자에서 풍유를 즐기는 사람들과 저 아래 강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모습, 성벽 밖에 돌로 전투 연습을 하는 병사들과 성 담 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경꾼들 모습까지 평양성 일대를 두루 다니며 세밀히 관찰한 것을 빼놓지 않고 한 폭에 담았다.

소박하지만 자상한 안내로 풍성해진 전시로 미술관을 나와 산책하는 내내 마음이 즐거웠다.

/황혜영 서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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