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랑 한 장 남은 달력, 날 앞에 서서 전시돼 있는 작품들과 만나고 있다. 낡고 오래된 건물과 손때 묻은 가방, 자잘한 소품 같은 일상들이 오늘이 어제인 듯 어제가 오늘처럼 흐르고 있다. 번득이는 날 앞에 속절없이 베이고 파여 골 깊은 주름으로 이지러진 여인은 굳이 아픈 과거사를 들추지 않아도 외롭게 지켜낸 삶의 흔적이 역역함을 드러낸다. 한켠, 저 숱한 군상들이 무심히 어깨 부딪고 아웅 대는 세태 속에서도 만다라 그 우주의 질서는 이리 잡혀가는 것인가.  '날, 앞에 서다' 묘한 뉘앙스를 안겨주는 문구에 이끌려 들어선 곳이 진천 '생거판화미술관' 이다.

지금 한창 소장전이 열리고 있다. 백곡호의 바람결 따라 은은히 울리는 종소리를 머금고 독특한 예술의 향취를 품고 있다. 그곳에 들어서면, 차고 날카로운 칼끝으로 흐드러지게 피워낸 꽃을 만난다. 살아 움직일 듯 한 솔잎, 댓잎 하나하나에서 숨소리를 듣는다.  예리한 칼날과 나무· 동·석판 그리고 부드러운 한지와 먹, 각기 다른 물성이 한 몸이 되기까지 작가는 그 심성을 어찌 다스렸기에 그들이 서분서분 틈을 내 주었을까. 배려와 양보, 인고의 시간을 느낀다.

판화의 과정 자체가 사람살이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음을 본다. 부드러운 붓끝이 아닌 날선 칼날에서 둥글둥글 삶의 모습을 빚어내느라 삭이고 다독이는 자기 성찰은 또 얼마였을까. 모든 것 지배할 듯 날선 조각도의 카리스마/ 미려하지만 곧고 단단함이 결코 만만치 않은 목질/ 각기 다른 물성의 맞선눈빛이 등줄기에 꽂힌다./ 이들이 부딪고 타협하며 서로 알아가기까지 그 얼마인가// 어르고 달래며 하나로 융합시킨 판화가의 굳은살/ 그간의 고통을 결 고운 한지가 가없이 품어 안을 때/ 비로소 아름다운 작품이 오롯이 완성된다는 걸/ 내 이제야 알 것 같다./ 여기, 한올한올 새겨진 작품의 숨결에서…./ 학창시절의 고무판에서 머물다 판화작품을 처음 대한 것이 십 수년 전, 우리지역에 터를 잡고 활동하는 김준권화백의 작품 '상송(上松)가는 길'이다.

내 고향의 소나무길이 작품의 소재가 된 것이 반가웠고, 겹겹이 산 그림자 드리운 고향의 산 능선이 이리 아름다웠나 싶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판화의 작품을 통해 발견했다. 청정한 지조의 솔과, 대나무의 곧음, 때로는 낭창낭창 휘늘어진 능수버들에, 화사한 복사꽃까지. 판화이면서 붓끝으로 그려낸 그림보다 더 섬세하다. 회화도 아닌 것이 회화인 듯 부드러운 붓 감을 띠기도 하고, 회화인 듯 바라보면 복사가 가능한 판화란다.

작품에 눈을 가까이 들이대도, 한발 물러 멀찍이 바라봐도 장르의 모호성이 외려 신비감을 준다. 판화의 매력이다. 날, 앞에 서서 저 단단한 세상을 본다. 날 세워 칼을 들이댄다고 호락호락 면을 내 줄 것 같지 않는 아득함…. 그러나 또 다시 펼쳐지는 날, 날들. 호기롭게 새로운 꿈을 꿔야 할지 주춤해진다. 아무생각 없이 그저 예리한 날이 수없이 후벼낸 만다라에 흠뻑 빠졌다 가라는 말인가. 만다라는 불법의 모든 덕을 두루 갖춘 경지 또는 우주를 상징한다지 않던가. 한해의 끝자락에 서서 무뎌진 날을 벼르고 다시 날을 든다. 칼춤을 추며 저 아득한 세상과 한바탕 사랑놀음으로 어우러져 볼 일이다.

/김윤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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