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대학생일 때 故정채봉 선생님에게 질문을 하고 직접 받은 '향기자욱'이라는 책 중에서 '난파선의 사람들'이라는 동화를 소개한다. 항해하던 요트가 태풍을 만나 표류하기 시작했다.

배 안에 남은 사람들은 절망에 빠졌다. 그런데 조난객 가운데 임산부가 아기를 낳았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의 눈이 번쩍였다. "우리가 죽더라도 저 아이만은 살리자." "저 아이에게 육지의 꽃과 평화를 맛보게 하자." 한 사람이 자기 혼자만 쓰기 위해 숨기고 있던 낚싯바늘을 내놓았다. 또 한사람이 낚싯줄을,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미끼를 내놓았다.

사람들은 힘을 모아 낚시질을 해서 산모를 먹였다. 또 한 사람이 임종을 맞았다. "부디 내 죽음이 저 아기를 위한 죽음이 되게 해주시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얼마 전까지 옆 사람을 원수처럼 여겼던 사람들의 얼굴에 평화가 찾아왔다.

남은 사람들은 조각난 판자로 노를 만들어 저었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오직 아기를 뭍에 닿게 하기 위해 저어갔다. 2014년 대한민국은 동화 속의 난파선과 같다고 해도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일본 엔저 공세, 유럽 및 중국의 경기 침체로 인한 대외 수출 부진,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표류하게 한 세월호 참사 등은 태풍 그 이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표류하는 배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했었나? 우리 사회는 배가 왜 표류하게 됐는지 그 책임자만을 처벌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그러한 처단만이 배의 표류를 바로 잡는 길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서로를 원망하고 불신하는 절망에 빠져 있지 않았나 싶다. 우리에게는 2015년 새해라는 '아기'가 있다.

표류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배에서 태어난 이 아기를 안전한 땅으로 데려가 꽃과 평화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는 서로를 이해하는 열린 마음으로 협력해야 할 것이다.

우선 각자가 가지고 있는 낚싯바늘과 낚싯줄과 미끼 같은 물질적인 것들을 사회를 위해서 흔쾌히 내놓아야 한다. 또한 임종하는 순간까지 아기를 생각하는 것처럼 자신의 아집을 버리고 사회의 큰 목표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한국 역사를 보면, 우리 민족은 역경과 시련의 시기에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항상 위기를 기회로 이용했다. 지난 1990년대 외환위기가 대한민국을 침몰시키려고 할 때,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격려하며 우리는 금모으기 운동을 벌이는 등 대동단결해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2000년대 초반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경제성장을 지속시켰다.

이처럼 우리는 '학습된' 위기 극복 능력이 있다. 위기에 대한 내성이 있다. 대한민국이 풍랑에 밀려 다소 예정된 항로를 이탈해도 우리에게 침몰은 없다.

왜냐하면 우리도 동화 속의 난파선의 승객들처럼 조각난 판자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아기를 뭍에 닿게 하기 위해 기쁨에 차서 노를 저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14년을 몇 주 남겨 두고 새로 태어날 2015년을 기대하면서 난파선에 타고 있는 우리의 가슴 속에 절망과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과 용기가 샘솟는 것은 바로 우리가 '난파선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김기형 김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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