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준 유안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필자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청주지부에서 공익법무관으로 근무하는 동안 준법강연의 일환으로 한 달에 한번 정도 북한이탈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생활법률강의를 맡아왔는데, 그때의 인연으로 복무기간이 끝나고 변호사로 개업한 지금까지도 여전히 강의를 하고 있다.
 

그 강의에 첫 번째 주제이자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부분은 '문서 작성의 필요성과 유의할 점'에 대한 것이다.
 

한번이라도 소송대리인 없이 소위 '나홀로 소송'을 진행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상대방이 증거로 우리의 자필서명이나 도장이 찍힌 차용증이나 각서를 냈을 때 재판장은 본인이 서명을 한 것이 맞는지, 본인 도장이 맞는지부터 확인한다.
 

그때 우리가 "제가 작성한 건 맞긴 맞는데…사실은…."이라고 말하면서 경위를 설명하려고 한다면, 재판장은 그 뒤에 이어지는 장황한 설명은 귀담아듣지 않으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판사가 판결문을 쓰는데 필요한 요건이 이미 충족됐기 때문이다.
 

매매계약서나 차용증, 지불각서 등 증명하고자 하는 법률적 행위가 그 문서 자체에 의해 이뤄진 경우의 문서를 '처분문서'라고 하고, 문서가 입증자가 주장하는 특정인의 의사에 기해 작성됐다는 것을 '문서의 진정성립'이라고 한다.
 

소송에서는 문제되는 법률행위의 존부 또는 효력이 다퉈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문서의 진정성립은 위 문서가 진정으로 성립됐음을 주장하는 쪽에서 입증해야 한다.
 

보통은 법률행위의 유효함을 전제로 그에 따른 이행을 소송을 통해 구하는 원고가 될 것이다.
 

그때 만약 위 문서에 서명날인을 한 상대방이 자신이 작성한 사실을 부인하게 된다면, 진정성립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데 그 입증을 위해 사용되는 방법이 보통 ① 공증 ② 서명·날인·무인이다.
 

공증을 하게 될 경우 그 문서에 들어있는 내용이 진실한지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양 당사자가 그와 같은 문서를 작성했다는 사실(진정성립)은 인정을 받게 된다. ㉠ 자필로 서명을 했음에도 부인할 경우 필적감정을 해야 하긴 하지만 필적이 동일할 경우 진정성립이 인정될 것이고, ㉡ 날인을 한 경우에는 그 도장의 인영(도장이 찍힌 모습)이 그 사람의 도장과 동일할 경우 날인(도장찍은 것)이 그 사람의 의사에 기한 것이라고 사실상 추정되고, 날인의 진정이 추정되면 문서 전체의 진정성립이 추정되게 된다. ㉢ 무인(지장)을 찍었음에도 상대방이 부인할 경우 지문감식이 필요할 것이다.
 

일단 문서에 자의로 서명날인을 하게 되면 그 안에 들어있는 모든 내용을 받아들이고 용인했다는 의미로 간주되게 된다.
 

법정에서 사실 도장을 찍은 것은 맞지만, 그 내용을 잘 읽지도 않고 시키는 대로 도장만 찍었다는 변소는 판사를 설득시킬 수 없다.
 

따라서 도장을 찍거나 서명을 할 때는 문서의 내용을 꼼꼼히 확인할 필요가 있고, 서명·날인 후 위조방지를 위해 사진을 찍어 보관할 필요도 있다.
 

소송에서는 입증하지 못하면 해당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고, 그 사실을 인정받지 못하면 아무리 억울하다고 해도 손을 들어줄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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