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묵 청주시노인종합복지관장

[충청일보]편지 쓰기를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대학 시절에 참 많은 편지를 썼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늘 만나는 사람에게도 편지글을 통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무슨 내용을 편지에 담았는지 뚜렷이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할 말이 꽤 많았던 것 같다.
 

반면에 어린 시절의 편지 마지막 구절은 지금도 뚜렷이 기억한다.

마지막은 늘 이랬다.

"할 말은 많지만 이만 줄이겠습니다."

편지지 10장을 써도, 몇 줄을 써도 마지막은 이렇게 마무리했다.

정말로 할 말이 많았는데 그만 쓰는 경우도 있었고, 할 말도 없으면서 이렇게 마무리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 구절이 기억나는 것은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 참으로 필요한 구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이 많은 세상에 살고 있다.

참말이든 거짓말이든 상관하지 않고 여러 매체를 통해 수 없이 많은 말들을 쏟아낸다.
 

과거에 내가 했던 말들이 내 인생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인사청문회를 통해 말의 힘을 확인하기도 한다.

무엇이든지 도가 지나치면 좋을 리 없다.

특히 말이라는 것은 더욱 그러하다.

떡은 여러 사람을 거치면 줄어들고, 말은 여러 사람을 거치면 늘어난다고 한다.

나에게서 출발한 말이 나에게 되돌아 올 때는 부풀릴 대로 부풀려져 돌아올 때가 많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도 하지만, 말 한 마디로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말이라는 것은 마치 비상과 같아서 잘만 쓰면 약이 되지만, 잘 못 사용하면 독이 된다.

이렇게 말 많은 세상에 할 말 다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말이 독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필자 역시 올 한 해 많은 말을 해 왔다.

여기 저기 불려가서 좋은 말씀 한 말씀 요청받기도 했다.

그것도 모자라 이렇게 지면을 빌어서 말을 해 왔다.

한 해 동안 무슨 말을 했나 돌아보니 누군가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기보다는 질책과 비난의 말이 더 많았다.

올 한 해 우리가 살아 온 세상은 희망과 기쁨이 필요했다.

감동과 격려의 말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나는 세상과 동떨어진 말을 더 많이 해 왔다.

지면을 빌어서나마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 자신과 이웃들에게 많은 말들을 쏟아 낼 것이다.

그 말들이 자기 인생에 걸림돌이 되지 않고 자신과 이웃에 희망과 감동과 격려가 되는 말이 되기를 희망한다.

생명을 주는 말이 되기를 희망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가 내뱉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독으로 사용될 수도 있을 것이기에 "할 말은 많지만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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