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 용 주선문대 국제레저관광학과 교수

[안용주 선문대 국제레저관광학과 교수] "역병, 비탄, 결핍, 범죄, 절망… 그리고 남겨진 희망" '판도라의 상자'에서 탈출해 인류에게 지속적인 재앙을 주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 일절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판도라의 상자를 간략하면 "판도라는 제우스로부터 절대 열어봐서는 안된다는 다짐과 함께 받은 상자를 호기심에 열게 되고, 이로 인해 각종 재앙이 상자로부터 탈출해 인간세계를 혼란에 빠트리게 됐다.
 

놀란 판도라가 상자를 닫았는데 마지막으로 탈출한 것이 '희망'이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판도라의 상자에는 몇 가지 다른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리스어로 피토스는 '상자' 혹은 '항아리'로 해석되는데, 바브리우스의 '우화'에는 "판도라는 신들로부터 축복으로 가득 찬 상자를 받았다. 
 

그러나 이 상자를 열자 축복은 날라가 버리고, '엘피스'만이 남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엘피스'에 대한 해석에 따라 판도라의 상자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고대희랍어로 엘피스는 '전조(前兆)' 또는'기대', '희망'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영어권에서는 'Hope(희망)'로 번역된다. '희망'으로 보는 해석으로는 수많은 재해들이 밖으로 도망쳐 나왔지만, 마지막으로 희망이 상자에서 나올 수 있었기 때문에 인간은 절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거짓된 기대'로 보는 해석에서는 제우스신이 마지막으로 상자에 넣은 가장 큰 재앙이 거짓된 희망이라는 설이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절망할 수도 없으면서 헛된 기대를 품으며 살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어느 이야기를 받아들이던 '희망'이 다른 재앙과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늘을 살 수 있고, 상자 안에 엘피스가 남아있기에 우리는 오늘의 절망을 견디고 살아갈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365개의 퍼즐조각도 몇 개 남지 않은 지금, 우리의 뇌리를 스치는 말은 송구영신 혹은 다사다난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판도라의 상자에서 우리를 살려준 것은 희망이가기 보다는 망각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미 과거형이 돼 가고 있는 것들, 어쩌면 지금 숨조차 쉬기 어려워 꺼이꺼이 심장으로 울고 있는 사연들, 마흔 중반의 자식을 가슴으로 묻어야만 했던 내 어머니에게 조차 나는 망각으로 치유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잊는 것이 진정 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은 안다. 잊을 수 없어, 숨을 쉴 수조차 없어 가슴 한 켠에 비켜두고 묻어두고 있다는 것을. 모든 슬픔들을 가슴 한 켠에 묻어두고 을미년 새 아침을 웃음으로 시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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