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 철학교수

[충청일보]천지자연에서 감각적으로 확인이 가능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함께 공유해야 하는 일반적으로 소중한 것들이고, 시간과 공(空)과 같이 감각적으로 확인이 불가능한 것은 사용하는 사람들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다르게 나타나는 차별성을 지니고 있는 일반적으로 소중한 것들이다.
 

특히, 시간은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상황처럼 보여 지는 것이지만 이것들의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사람의 십년을 숫자적 개념으로 보면 3650일이라는 숫자가 나오지만 같은 숫자상에서 나오는 운명의 조화라고 하더라도 운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길흉화복이 모두가 다르다.
 

그래서 세상에서 공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시간과의 문제가 된다.
 

즉 17세의 소년이 학문으로 정진을 계속하면서 사용하는 1년(一年)의 시간과 17세의 소년이 놀이 문화에 빠져서 1년(一年)의 시간을 사용하는 것과는 같은 시간을 운용했더라도 서로의 운명에서는 상당한 틈을 만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에는 사람을 풍요롭게 하는 금맥이 있고 시간에는 사람을 영광스럽게 하는 광영의 빛이 있으며 시간에는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법도의 빛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예와 권력과 풍요는 시간 속에서 잠재하는 것이지 운명의 신이 어느 날 신령스러운 기운을 타고 와서 사람 앞에 나타나는 환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가끔씩 '내게 남은 것은 시간뿐이다'라는 속언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말들을 무심결에 자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자신(自身)은 자신의 인생에서 자신의 꿈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의 문제에서 자신의 확고한 신념(信念)이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가 인정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예를 들면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운명이 지금을 밭에서 밭을 일궈야 하는 것처럼 동(動)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라면 밭을 일구는 노력을 다해야하기 때문에 바쁘다.
 

반면에 자신의 운명에 곡선이 겨울추위처럼 정(靜)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라면 밭에 나가기 위해서 자신의 준비를 다해야 하니 매우 바쁜 것이다.
 

하지만 정(靜)의 시점을 잘못 이해해 쉬는 시점이라고 생각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포기하는 것과도 같다.
 

왜냐하면 봄날이 돼 밭을 일군다는 것은 밭에 나가기 위해 겨울 동안에 어떠한 준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밭으로 나아가 밭을 일궈야 하는 업무와 업무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훌륭한 스승을 만났다면 시간을 아껴서 쓰는 사람을 만났음이요 훌륭한 가르침을 받았다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를 배웠음이다.
 

결론적으로 운성(運性)의 작용에서 발념(發念)은 직접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좌우하는 한 집안의 어른과 비교할 수가 있고 시간을 활용하는 방안들은 자신의 운명을 가꾸는데 필요한 연장들과도 비교를 할 수가 있다.
 

지금까지 자신(自身)의 시간을 소중하게 아껴서 사용을 했던 사람이라면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신비로운 운성(運性)이 그를 도울 것이지만 지금까지의 시간을 허비하면서 자신의 시간을 버렸다면 시간도 그 사람을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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