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어느 날 퇴근길에 보니 때 아닌 붕어빵 포장마차가 우리 집 앞 길가에 놓여있었다.
 

무심코 지나가면서도 아직 겨울이 멀었는데 벌써 붕어빵을 팔려나?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어느 주일날 교회를 가다보니 그 포장마차가 또  거기에 있었다.
 

장사도 하지 않는 계절에 왜 왔다 갔다 하나 궁금했지만 또 그냥 지나쳤다.
 

그 후 한 달 가량 지났을 무렵 붕어빵은 처음 놓였던 자리로 돌아와 장사를 하고 있었다.
 

포장마차를 이리저리 옮겨 놓았던 것은 목이 좋은 곳을 선점하려고 했나보다라고 나름 생각했다. 그러나 경기가 어려운 탓인지, 아님 우리의 입맛이 너무 고급스러워진 탓인지 추운 겨울이 됐는데도 붕어빵을 사먹는 이가 거의 없는 것 같다.
 

퇴근 후 몇 개라도 사기 위해 들어 가보니 구운지 오래됐는지 차갑게 식은 빵 7개가 남아있었다. 1000원에 3개란다. 마음이 짠해 남은 것을 다 사가지고 왔지만 구운지 오래돼서인지 맛은 없었다. 요즘 붕어빵만 안 팔리는 게 아니란다. 지난 연말 역시 연말이라는 특수성이 사라졌다고 상인들은 말한다. 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구제역이 발생해 모든 행사와 모임이 취소되다 보니 체감경기는 더욱 바닥일수 밖에 없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소망해야 할 시점에서 아직도 사회 분위기는 어수선 할 뿐 살아나지 않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남아 있음은 날개 없는 천사들이 곳곳을 찾아다니며 쌀과 연탄을 전달하고, 자선냄비로 발걸음이 분주한 시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성금을 내는 이웃들이 꼭 여유가 있어 하는 것은 아니리라.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 손을 잡고 와서 자선냄비에 성금을 넣는 어린 손은 우리의 희망이요 사랑이다. 지난 연말, 작게라도 동참하고 싶은 마음에 저금통을 가방에 넣어가지고 나왔다. 아들이 일 년 동안 모은 것이라 꽤 무거웠다. 늦게 출근하는 아들을 깨울 수 없어 그냥 들고 나왔지만 아들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동참할 것이다.
 

한 해의 결실을 구세군냄비에 전해주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흐뭇했다.
 

EBS방송에서 자선냄비에 대해 집중 취재한 것을 봤다, 냄비에 돈을 넣는 사람들이 결코 여유롭지 못한 이웃들이 많단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함께 하고 있는 그들의 표정은 한없이 밝다. 목표액을 잘 채웠는지는 모르지만, 나의 어려움보다 남의 불편함을 먼저 생각하는 이들이 있기에 아직은 살맛나는 세상일 게다. 톱니바퀴가 함께 맞물려 소리 없이 돌아가야만 동력을 만들고 힘을 만들 듯이 나와 내 이웃이 함께 손을 잡을 때 진정한 행복이 있지 않을까. 자선냄비에 돈을 넣고 가는 척추장애를 가진 분이 이야기하길 그래도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구세군 종소리가 '딸그랑, 딸그랑' 울리면 '빨리와, 빨리와'로 들린다고 했다.
 

올해 연말은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무심히 흘러가는 풍경이 아니라 '빨리와 빨리와'로 들려 모두가 함께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발길 뜸한 그 포장마차에도 따뜻한 온기와 붕어빵 굽는 냄새가 가득해 새해엔 희망의 포장마차가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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