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이다. 일 년 동안 삶의 편린들을 기록한 다이어리를 새것으로 옮기며 여러 복잡한 상념에 젖을 즈음, 가지런히 정돈된 책꽂이에서 무심코 다이어리를 한 권 꺼내 펼쳐드니 20여 년 전 일기장이다.
 

그리고 그 일기장에서 한 장의 색 바랜 메모지가 떨어지기에 펼쳐보니 깨알 같은 글씨로 '九悳'이 적혀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젊은 시절, 미국회사에 근무할 당시 같이 근무하던 한국직원과 함께 미국직원을 대할 때 우리의 자세를 갖추자며 메모를 해 지갑에 넣고 다니던 쪽지다.
 

중국 5세기 초, 양(梁)나라의 유협이라는 사람이 쓴 남북조시대의 문학 평론서로 전반 25편에는 문학의 근본원리를 논술하고 각 문체에 관한 문체론을 폈으며, 후반 25편에는 문장작법과 창작론에 관해 논술한 총 50편으로 구성된 문심조룡(文心雕龍)에서 발췌한 글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아홉 가지 덕(九悳)'을 뜻한다.
 

하나, 관대하면서도 위엄이 있을 것. 둘, 부드러우면서도 자존심이 있을 것. 셋, 거침없이 말하면서도 공손할 것. 넷, 남을 다스리면서도 존경을 받도록 할 것. 다섯, 남에게 순종하면서도 영향력이 있을 것. 여섯, 강직하면서도 온화할 것. 일곱, 검소하고 깨끗할 것. 여덟, 단호한 결단력과 실천력이 있을 것. 아홉, 정신이 강건할 것이며 도에 따라 행동할 것 등이다. 우리는 잘 살게 됐다.
 

그러나 정신은 점차 황폐화되고 정서는 갈수록 메말라 가는 것 같다. 신문·방송을 보면 모두 자기주장뿐이고 인터넷에는 온갖 음모론이 횡행한다. 청소년을 나무라던 어른이 봉변을 당하고 맞아 죽는 세상이니,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볼 것이다. 세상이 왜 이렇게 삭막하게 변해 가는지, 정서적으로 메말라 가는 우리의 현실을 한탄만 하고 있을 것인지, 그렇다면 정녕 사랑과 정이 넘치는 세상을 만들 수는 없는 건지.
 

요즘 들어 여러 매체와 뜻있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일컬어 의식이 없는 사회라고 걱정하며, 근본이 바로선 나라를 만들자는 기본질서 지키기와 예의·범절 갖추기 운동을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아울러 남을 위한 배려와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절대적으로 동감하며 기성세대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해 본다. 
 

'문심조룡'에서는 아이들을 훈육하는 아홉 가지 덕(悳)을 말하고 있다. 처음 접했을 때는 실천하기 어려운 가르침에 대한 선행이기에 실행이 어려웠으나, 올해에는 그 시절로 돌아가 '九悳'을 되뇌이며 필자부터 모범적인 생활을 해야겠다, 이제 다시 새해고 나이도 한 살 더 먹었으니.

/양충석 대한설비건설협회 충북도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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