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들짝 전화벨 소리에 꿀잠을 떨치고 집을 나섰다. 동살이 잡히기 전 어둠이 절정에 달한 시각이다. 더욱 낮게 내려앉은 기온은 매운바람을 끼고 기를 겨루듯 대든다. 언제는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 했던가? 등산화 끈을 조여매고 맞서본다. 동골 수녀원 쪽에서 오르는 태령산 오름길로 들어섰다. 영산을 둘러싼 어둠이 쉽게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기어이 손전등이 동원되고, 앞에서 뒤에서 불빛을 비춰 길을 열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나는 고스란히 혜택을 받는다.

얼마 전, 미욱했던 자신을 향해 가슴 치던 생각을 돌아보며 그래도 이리 덕이 되는 사람이 많구나 싶어 위로를 받는다. 고요한 새벽, 눈길을 밟는 발자국 소리가 크고 선명해 기분까지 명징해진다. 눈길과 아이젠이 만나 뽀드득뽀드득 이루는 화음이 즐겁다. 산은 높이 오를수록 몸은 더 낮은 자세로 수그러들고, 말도 아끼게 된다.

우뚝한 산이 주는 무언의 가르침을 몸이 먼저 아는 게다. 목덜미로, 등줄기로 땀이 흥건히 젖어들고 숨이 턱에 차오른다. 잠시 숨 고르기를 두세 차례 거쳐 정상 부분에 다다를 무렵 주위가 희붐해 온다. 땀에 젖은 채 정상에 서면 한기가 든다며 정상 못미처에서 끓여온 커피를 나눠주는 사람의 배려도, 따끈한 커피 한잔에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바람결도 좋다.

해발 451m 태령산 정상에 올라섰다. 흥무대왕 김유신의 태를 묻은 태실이 동그마니 자리하고 있다. 한발 앞서 도착한 지인들이 벌써 여럿이다. 서로 새해 덕담을 주고받은 풍경이 정겹다. 해맞이행사가 올해는 구제역 여파로 취소되는 바람에 개인별로 산을 오른 사람들이다. 떡시루에 돼지머리를 갖춘 산제는 아니지만 태실 앞에서 밤, 대추 등 제물을 차려놓고 산제를 올리는 모습이 자못 경건하다. 지폐 하나 얹으며 그들의 의식에 동참하는 것으로 동질감을 나눈다.

그러는 사이 동녘하늘에선 새 생명의 탄생에 앞서 이슬 비치듯 벌겋게 동살이 잡히기 시작한다. 문필봉(文筆峰)을 안으로 하고 있는 문안산과 그 오른편에 위치한 문봉리 쪽에서 새해가 붉은 덩어리로 불끈 솟아오르고 있다. 장엄한 순간이다. 이 장엄한 순간의 탄생이 어찌 오늘 뿐이었으리. 매일매일 이렇듯 경건함으로 하루가 열리고 있었을 터인데…. 대자연의 앞에 한낱 인간의 속성은 얼마나 얄팍한가. 그동안 맺어온 인간관계를 되짚어 본다. 지난해 호되게 부려온 육신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그리 나부댔던가 싶다.

사람의 욕망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 물고 물리고, 속고 속이는 인간사, 믿음과 신뢰 앞에서 들끓었던 나를 본다. '진정으로 대한다는 것' 그보다 귀한 것이 어디 있으랴. 이즈음 사랑하는 마음이 자꾸 자연으로 기울게 되는 것은 사람의 관계가 자연의 순리와 같지 않음에서 오는 회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처럼 하얗게 눈 쌓인 산에 오르면 누군가를 그리워하기보다 아스라한 산릉을 좇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올라온 산은 다시 내려가야 하듯 결국 인간은 사람들 사이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진정 사람다운 사람살이가 우선하는 그런 사회는 온전히 사람의 몫이 아니던가.

/김윤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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