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양대 교수

얼마 전 석사학위 논문을 쓰는 대학원생으로부터 설문지 작성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설문의 주제는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관광콘텐츠 개발'로서, 축제나 공연·관광에 있어 스토리텔링이 미치는 영향이나 효과에 대한 연구였다.
몇 년 전부터 학생들에게 스토리텔링을 가르치고 있지만, 이제 관광학쪽에서도 스토리텔링에 대한 중요성과 전문성을 인식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이 되니 전국 방방곡곡에서 축제를 개최한다는 소식들이 들려오던 터라 설문지를 풀면서 내가 경험했던 축제를 되돌아보았다.
이런저런 축제를 떠올려도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없었다.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벗어나 색다른 즐거움을 체험하고자 하는 것이 축제인데, 늘 식상하다는 느낌만 받았던 같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축제의 명칭이나 주제는 전혀 다른데 어느 축제든 그 내용이 비슷했던 것이다.
축제와 전혀 관련이 없는 먹거리 장터와 상점들이 천막을 치고 들어차 있었으며, 가수들이나 난타, 풍물패들의 공연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또 불필요하게 축제의 기간을 늘려 주제와 벗어난 잡다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바람에 그만의 개성이나 독창성이 사라져 버린 경우도 있었다.
이와 같이 축제가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은 스토리텔링의 부재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났던 축제들은 거의 스토리텔링과 관련된 콘텐츠들이 없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단순하고 재미없는 정보를 독특하고 흥미있게 가공해 준다. 정보와는 달리 오래도록 기억하게 하는 특성도 지니고 있다. 스토리텔링은 용어 그대로 스토리(story)와 텔링(telling)의 결합으로 이야기+하기(말하기)라는 뜻이다.
텔링은 매체에 따른 기술적인 요소로서 표현되는데, 하나의 이야기가 문자·음악·영상·만화·애니메이션·게임 등 다양한 미디어로 나타날 수 있다. 즉 축제의 고유한 특성과 독특한 주제를 이야기로 창작하여 이를 다시 다양한 미디어로 가공해 내면 스토리텔링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강경젓갈축제라면 젓갈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발굴ㆍ가공하여 이를 영상이든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축제기간에 상영하고, 홈페이지를 통해 상시 홍보하면 훌륭한 축제 스토리텔링이 된다. 스토리텔링은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고 체험의 깊이를 확대시켜준다.
이러한 점에서 단발성 체험 위주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축제일 경우 거기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가수들의 공연을 줄이고, 스토리텔링 공모전을 통해 축제와 관련된 문화콘텐츠를 축적해 나가는 것도 축제문화를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방편이 되지 않을까 한다.
우리나라 축제의 현황을 알고 싶어 문화체육관광부의 통계를 찾아 보았더니 올해만 해도 926개가 열렸거나 열릴 예정에 있다고 한다. 등록된 지역축제의 수가 무려 1,100개를 넘어서고 있었다.
대전ㆍ충청지역은 대전 20개, 충북 52개, 충남 87개의 축제가 등록되어 160개에 달하는 행사가 치러지고 있다.
이 중에서 우리나라 대표축제로 선정된 보령머드축제를 비롯하여 한산모시문화제·금산인삼축제 등 몇몇 축제는 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되어 국제적인 홍보·마케팅·전문가 컨설팅 등을 정부 차원에서 지원받고 있었다. 그러나 지자체의 예산만으로 치러지는 대부분의 행사는 아무래도 그 내용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도 하루에 3개 정도의 축제가 우리나라 어디에선가 끊임없이 열리고 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찾아간 사람들에게 스토리텔링을 통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축제의 시간을 선사해 볼 것을 제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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