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주 선문대 국제레저관광학과 교수

 

로마 시대에 지어진 아피아 가도(Via Appia)는, 기원전 312년, 본시 주변국을 침략하기 위해 로마군의 신속한 이동을 목적으로 건설된 가장 오래된 포장도로로, 로마에서 시작되어 이탈리아 반도의 주요 도시를 잇는 지금의 고속도로와 같은 역할을 가졌다. 그러나 숱한 전쟁과 이를 통해 확장된 영토를 잇기 위해 이탈리아 반도 뿐만 아니라 카리브, 브리타니아, 이베리아반도, 아프리카, 그리스 등 로마의 속국으로 전락한 지중해 전역에 걸쳐 그물망처럼 이어지면서 군사적 역할뿐만 아니라 물류와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때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통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길’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사람이나 자동차가 다니는, 또는 하늘 길, 뱃길 등의 길이 있는가 하면,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길이 있다. 또한, 더 이상 강구할 방법이 없는 경우에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쓴다. 그런가 하면, 사람의 손에 익숙하거나 사용하기 편하게 하기 위해 ‘길을 들인다’고도 한다.

어쩌면 ‘길’은 사람의 생명의 원천이며, 생(生) 그 자체인 듯 싶다. 하트(♡)로 상징되는 성인의 심장은 약 350g, 자신의 주먹 크기와 맞먹는다고 한다. 심장을 한자로 표기할 때 심장(心臟)이라고 쓰는데, 심(心)이라는 한자가 네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것을 묘사한 것이라고 본다면 그 옛날에 현인의 혜안이 하늘을 찌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작은 심장에서 지구둘레(약4만km)의 3배에 해당하는 약13만km의 혈관 곳곳에 하루에 약9천리터의 피를 거르고 운반하고 있다. ‘길’을 통해.

‘길’은 사람을 잇고, 도시를 잇고, 국가를 잇고, 피아(彼我)를 잇는 ‘관계’를 만들어 낸다. 피아의 관계란 연(緣)이다. 사람의 삶은 관계의 연속, 인연의 연속이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와 인연의 연속선상에서 삶을 영위하고, 관계가 끊어질 때 우리의 존재 또한 필멸, 소멸됨을 알기에 작은 만남에 때로는 분노하고 타인의 분노에 동조하며 함께 울고 함께 웃을 수 있는 마음을 공유한다.

갓 스무살의 풋풋함을 간직하고, 기대와 꿈 그리고 어쩌면 동경심과 작은 경외심조차 담겨있는 초롱초롱한 눈빛의 주인공들과의 만남은 늘 긴장되고 기대되는 일이다. 그러나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관계에 지치고 인연의 돌에 차이면서 ‘삶’이라는 툰드라에 지쳐 헝클어진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보아야 하는 현실은 내가 견뎌야할 카르마이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수많은 ‘길’이 거미줄처럼 눈앞에 펼쳐지지만, 정작 어느 길이 나의 길인지 판단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 졸업이란 단어에 쓰이는 졸(卒)에는 ‘마치다’ ‘끝내다’는 의미가 있는 반면, ‘마침내, 드디어, 기어이’라는 의미도 함께 가진다. 많은 사람들이 졸업에 대해 ‘이제부터 시작이다’는 말을 쓰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부모와 자녀의 인연은 하늘이 맺어준다지만 사제(師弟)의 인연 또한 이에 못지않기에 군사부일체라고 하지 않는가. 어버이를 가리키는 친(親)이라는 한자는 목(木) 립(立) 견(見)으로 이루어진다. 부모란 높은 나무(木)위에 서(立)서 자식의 오늘과 내일을 늘 지켜보(見)고 염려하는 존재일 것이다.

대학의 낭만도, 사제지정 조차 찾아보기 힘든 오늘, 이 모든 짐을 지운채 학교를 떠나 광활한 영토에 나 자신의 성(城)을 쌓기 위해 길 떠나는 사랑하는 우리 자녀를 위해 부디 느림의 미학처럼 ‘기다림’과 ‘믿고 지켜봐 주기’를 간곡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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