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숙하고 자숙하고 공경하는 것을 경(敬)이라 하는데 경(敬)은 오래 머물지라도 그 색깔이 변화하지 아니하고 그 느낌에도 변화가 없으며 그 모양에도 변화가 없다.
이것을 아름다움이 생겨나는 근원이라 하고 위대함이 생겨나는 힘이라 하며 질서를 유지하는 근본이라 한다. 그리고 운명의 시초가 되는 이유가 되고 운명의 경이로움을 창조하는 근원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경(敬)은 하나 된 마음과 자리를 옮기지 않는 생각이기 때문에 방종해 혼란한 것들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흩어져서 문란한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경(敬)한 마음에서는 오로지 그것으로 만족을 하고 그것으로 멈추며 그것으로 분수를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나아갈 때에는 절도가 있고 머무름에는 족함이 있으며 행실에 있어서는 올바름이 있다. 그리고 경(敬)한 생각에서는 그것으로 번잡하지 아니하고 그것으로 주인을 옮기지 아니하며 그것으로 멀리 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생각이 끝을 맺고 난 연후에 또 다른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에 이때에 발생하는 생각에서 참 진(眞)을 보는 것이다.
 

이처럼 생각과 마음이 경(敬)을 유지할 때라야! 애써 구하지 않아도 참다움과는 벗을 할 수가 있고 일부러 회피하지 않아도 재앙은 스스로 물러나며 애써 안달을 하지 않아도 큰 것들이 저절로 이루어지고 애태워 근심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문제가 풀리는 것이다.
 

한편, 경(敬)을 아끼는 사람에게는 선(善)하고 겸(謙)한 사람들이 가까이 하고 선(善)하고 겸(謙)한 사람들을 또한 경(敬)한 사람이 좋아하기 때문에 경한 사람과 선한 사람들이 함께 벗을 삼는 것이다.
 

까치는 까치끼리, 까마귀는 까마귀 끼리 벗을 삼는 것이다. 이러할 때에 경(敬)의 운성(運性)으로 운명을 만드는 까닭이다. 예로부터 성현들은 경(敬)을 말했고 선비들도 경(敬)을 노래하셨을지라도 이론의 학문으로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경(敬)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실천의 덕목이요, 행실이요, 언행(言行)이다. 그리고 마음의 지극함이요, 운명(運命)의 스승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나 타인의 일에서도 경(敬)한 삶의 자세는 경건하기가 그지없고 성실하기가 지극하며 진실지성이 가득하다.
 

그래서 경(敬)이 머무는 사람을 다른 사람들이 칭송하는 까닭이 된다. 이러한 칭송이 있을 때에 얻기 어려운 일감이 많아지고 일감이 많아진 곳에서 그 가치가 생겨나며 그 가치가 또 다른 선(善)을 만들고 그 적선(積善)에서 또 다시 후덕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리고 후덕(厚德)한 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작았던 언덕이 커져서 태산을 만드는 것과도 같고 작았던 개울이 커져서 강물을 만드는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경(敬)을 이야기할 때에는 이론이 아닌 실천의 덕(德)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경(敬)을 노래하는 마음이 어찌 하늘의 뜻을 모두 따름일까 마는 경(敬)한 가운데에서 올바른 마음을 만들고 올바른 마음에서 올바른 생각을 만들고 올바른 생각에서 참다운 운성(運性)을 만들고 참다운 운성에서 보람찬 운명(運命)을 노래할 수가 있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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