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재훈교수

일본은 물론 동양을 대표하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그의 연구소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건축가로 알려진 그가 작업을 하는 곳은 일반적인 설계사무소나 소규모 창작스튜디오 혹은 예술성을 강조하는 아트리에라는 명칭대신 창의적 설계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연구소로 운영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건축이라는 행위는 단순히 필지안에서 일어나는 3차원적 기능의 공간을 만드는 행위가 아닌 역사와 문화 그리고 지역의 연구를 통해 나타나는 총체적인 틀 속에서 유추하는 것이기에 가능한 많은 고민과 연구를 하기위한 목적으로 그렇게 명명하였다고 했다.
어찌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현대 도시가 처한 파편적 행위와 형태에 대한 준엄한 비판의식으로 여겨졌고 이에 대한 해결방향을 제시하는 것 같았다.
현재 우리가 사는 도시는 도시계획가·도시설계가·조경가·건축가 등은 물론이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다차원적 협의나 고민 없이 각자의 생각과 편견으로 단편적인 형태나 모습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도시가 커지고 복합화돼 다채널에 의한 형성은 어렵겠지만 점차 이런 이유를 핑계로 모든 것이 연결되고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 삶의 정주환경의 고리를 점차 끊어온 것이 사실이기에 다시 한번 잊혀져가는 중요한 원칙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
사실 그는 전문적인 건축교육을 받지도 않았음은 물론 젊은 시절 한동안 복서로 활동하기도 했던 입지전적 인물로 건축이나 도시를 공부하는 사람은 물론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설계가임과 동시에 현대의 사상가로 자리메김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학벌과 인맥을 중시하는 일본풍조에서는 비주류를 넘어 이단아로 취급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건축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찾으려고 노력하였고, 이를 위해 일본의 정신과 지역을 현대적 기술로 해석하여 나름대로 분명한 형태적 언어를 창출하였기에 지금의 대표적인 건축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가 이야기 하는 건축적 철학을 포함하여 도시만들기에 공통적으로 바탕이 되는 것은 '함께'라는 것이다.
이는 장소·역사와 문화 그리고 이웃과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선적으로 어떠한 시설물이나 장소 그리고 도시도 장소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성격과 속성을 찾아내고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바닷가와 산촌, 경사지와 평야 등 주어진 환경에서 오는 재료·형태·기술에 의한 공간만들기를 역설했다. 또한 역사와 문화는 그 지역에서 혼과 정신을 의미하는 것이고 도시나 건축공간의 질서를 만드는 단초이기 때문에 이들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려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한다.
축제를 즐기는 민족이거나 지역의 경우 이를 위한 광장이나 공공 공간을 반드시 조성해야하고, 개인프라이버시를 중요시 생각하는 경우는 가능한 주택의 방향이 서로 마주하지 않도록 하는 공간배치기법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웃과 함께하는 것은 기존에 이미 형성되어진 현재 상황을 존중하여 함께 어울리고 소통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의 도시개발은 새로운 것을 양산하기보다는 기존의 것을 어떻게유지하고 그 골격 속에서 점차 변화를 모색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현재까지의 어떠한 창조적 건축물과 도시도 하나의 역사이고 우리가 걸어 온 길이기에 소중한 것이고 이를 지역의 주민과 전문가가 함께 자산으로 활용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와 마주한 시간이 비록 한시간 남짓의 짧은 만남이였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로 인정받는 이유를 느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의 결과이지만 그의 작품관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그것은 우리가 망각하기 쉬운 원칙에 충실하고 이를 근거로 총체적인 시각으로 자기만의 색깔을 나타나는 데 있었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더욱 더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건축이나 도시를 만드는 행위는 아무 쓸모가 없을뿐더러 차라리 그렇게 하지 못할 바에는 한그루의 나무를 심는 편이 미래를 위해 훨씬 더 낫고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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