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물리적 요소는 일반적으로 도로나 교량과 같은 기반시설이나 건축물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들 시설은 고유한 기능과 역할을 바탕으로 다양한 도시 모습을 창출하기 위한 근간을 이루기도 하고 직접 도시의 모습을 만들기도 한다.

단순히 필요성에 의한 집단적 시설물의 군집은 기능적으로 만족할지는 모르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시설들 간의 관계성, 그 중에서도 시각적 관계성으로 한 지역이나 도시의 인상과 모습을 결정하게 된다.


 기본적으로는 적정규모의 시설들이 도시 내에 자리잡아야 하지만 가령 일부 기반시설이나 생활시설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거나 사용이 불편해 생활하면서 불편함을 유발하거나 건축물이 질서 없이 우후죽순처럼 솟아 일조권을 방해하고 시야를 가로 막는다면 이 역시 도시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고, 공간이나 시설의 이용자가 그들의 의도대로 계획하고 가꾸지 않는다면 효율적이고 쾌적한 환경과는 거리가 멀게 되는 것이다.


 바람직한 도시는 세 개의 다리가 달린 화로와 같이 서로 균형을 이루면서 보조를 맞출 때 기능과 아름다움과 철학이 함께하는 상징성 있는 정주체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균형을 잡아주는 제도적이고 기술적인 도구가 현대에서는 도시설계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기존의 계획이나 설계는 외형에만 초점을 맞추고 거대하고 웅장한 것을 추구해왔다면, 도시설계를 그 안을 채우고 빈곳을 새롭게 얽어 메나가면서 전통적인 도시조직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특히 사람, 그 중에서도 거주민이나 약자들의 입장에서 그들과 함께 작은 정주환경의 조성은 물론 관리까지 함께 만들어 나가는 추세가 지난 1990년대 이후 뉴어바니즘이라는 용어가 생겨나면서 많은 자족적, 자립적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금 시도되는 도시의 모습은 현재 우리의 환경과 상당히 상반된 시스템으로 가고 있다.


 우선 철두철미하게 토지에 대한 재산권 행사가 제약을 받고 있고, 필지마다 다른 계획설계조건 들로 구성돼 있다. 건물의 높이나 용적률은 물론 건물의 색체 및 창문의 위치, 그리고 대문의 재질까지 하나 같이 지정돼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관리기준과 규정까지 엄격해 거주민들이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규제에도 불구하고 이런 개념이 더욱 확산되는 이유는 우선 주민과 지자체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기준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다양한 지원과 건설의 인센티브를 제공해 기반시설을 비롯해 행정적인 뒷받침을 소홀함 없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만의 환경이 아닌 우리의 공간, 우리의 공간이 아닌 후세의 공간이라는 사명감으로 가꿔 나가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승자가 되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디자인 개념이 지역전체에 적용된 지역은 경관적인 측면 뿐 아니라 경제적 가치까지 다른 지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가 높게 형성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지역의 특성과 경쟁력 확보라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렇듯 함께 조화롭고 더불어 살고자 하는 디자인적 정주환경을 만들려고 하는 노력이 중소도시에서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황재훈 충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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