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금융당국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적인 이슬람 사상가 페툴라 귤렌 측의 은행을 강제로 빼앗았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고 터키 일간지 휴리예트와 자만 등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터키예금보험기금(TMSF)은 지난 4일 은행감독청(BDDK)의 결정에 따라 방크아시야의 지분 63%를 인수하고 경영진을 전면 교체했다.

은행감독청은 방크아시야의 지분 현황 자료가 투명하지 않아 감독규정을 준수할 수 없다고 판단해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방크아시야는 귤렌이 이끄는 사회운동 '히즈메트'(봉사)가 1996년에 세운 이슬람식 은행이다.

이슬람식 은행은 이자를 금지하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예금자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대신 출자금을 투자해 이익 또는 손실을 배분해 '참여은행'(participation bank)이라고 한다.

방크아시야 고위 관계자는 휴리예트에 "참여자가 많아 자료를 모으려면 시간이 필요해 제출 시한을 연장해달라고 요구했다"며 은행감독청이 정치적 동기로 예보기금에 넘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방크아시야는 지난 2013년 12월 집권 정의개발당(AKP)을 겨냥한 사상 최대 부패사건 검거작전이 벌어진 이후 정부로부터 각종 탄압을 받아왔다.

이 작전은 검찰과 경찰 내 귤렌을 따르는 세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를 계기로 과거 정치적 동지였던 에르도안 대통령과 귤렌은 정면으로 충돌했다.

귤렌 측 일간지인 자만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직접 지난해 초부터 공기업은 물론 민간기업에도 방크아시야에서 예금을 인출하라는 압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지난해 8월부터 방크아시야와 계약을 중단해 세금과 사회보장기금을 접수하지 못하도록 했다.

방크아시야는 이번 예보기금의 인수로 파산 위기에 놓였지만 뱅크런(대량 예금 인출)이 발생하는 대신 지지자들이 은행으로 몰려가 예금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야당들도 일제히 정치적 동기로 은행을 빼앗은 것이라고 비난했다.

공화인민당(CHP) 케말 크르츠다로울루 대표는 전날 "터키에서 개인의 재산은 안전하지 않다. 방크아시야가 대표적 사례"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할루크 코치 의원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상장된 은행을 공격했는데 이는 시장조작 범죄"라며 이번 결정은 법적, 경제적 근거가 없는 정치적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민족주의행동당(MHP) 에민 아이한 부대표는 에르도안 정부는 정치적 보복으로 은행과 기업을 빼앗아 터키를 제3세계로 전락시켰다고 비난했다.

역풍이 거세자 아흐메트 다부토울루 총리는 전날 밤 TV에 출연해 "이번 결정은 전적으로 법규에 따른 것이지 정치적 동기는 없다"고 해명했다.

이 은행은 적정자본비율은 20%로 터키 시중은행 가운데 3번째로 높았지만 부패사건 이후 정부의 탄압 논란이 일면서 지난해 3분기 3억 리라(약 1천4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이는 2006년 상장한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낸 것이다.

터키 당국은 지난해 12월 미국에 자진 망명 중인 귤렌에 테러단체 조직 등의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으며, 그의 여권이 취소됐다는 등의 이유로 미국에 추방을 요구하고 있으나 미국 정부는 응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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