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병진

고통스런 삶에 놓였을 때 괴로움을 덜고 혼란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서, 삶 자체가 불안정한 것이라는 사실을 항상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오늘이 내일과 같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막연한 믿음에 의지하는 것이, 우리의 불안을 감소시키고 내일을 계획하게 하며 오늘을 살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진실되고 성실하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산다면, 나와 내 가족에게 큰 불행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사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삶이 순조로울 때, 평안한 그 상황이 계속 유지 될 수 있을 것으로 모두 믿고 살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바로 잠시 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고통스런 상황이 자신에게 찾아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삶이 깨지기 쉽다는 사실에 두려움 마저 느끼게 된다.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 불치병에 걸리게 된다든지, 피할 수 없는 교통사고를 당해서 너무나 사랑하는 가족을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는 일은 아무리 조심하며 열심히 살아도 불현듯 찾아 올 수 있는 것이다.
좌절과 절망이 예기치 않게 찾아오고 롤러코스터를 타고 오르내리듯 삶의 상승과 하락이 교차될 때, 삶의 불안정함을 항상 수용하는 겸허한 자세를 갖춘 사람에게는 오름과 내림의 의미가 뭇사람과 다를 것이다.
오욕을 알고 영광을 논하고 어둠을 바라보며 밝음 속에 있는 삶의 자세를 견지하는 사람은, 성공의 기쁨을 맘껏 누리면서도 겸허히 감사하고 어차피 환희도 절망도 순간이라고 인지하며 실패를 준비한다.
그리고 삶이 곤두박질 칠 때도 성공의 순간이 지나간 것만을 한탄하지 않고 좌절도 순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며, 고통의 바다에서 헤매며 머물지 않고 그 의미를 천착하여 인생의 숙성기로 삼는다.
열병을 앓고 청력을 잃었으나 모든 세상의 소리와 단절되었기에 내면의 소리를 더 예민하게 감지 할 수 있었다는 김기창 화백, 그리고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보니 다른 남자가 자신의 아내와 누워있는 것을 보고도 분노하지 않은 처용의 삶에 대한 의연함 등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를 경악하게 하는 잇따른 유명인의 자살을 바라보면서 '삶이 끔찍한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의도하고 있을까?'하는 의미론적 관점에서 현상을 바라본다.
같은 사화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자살은 그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며, 사회집단을 구성하는 개개인 삶의 전체 방향에 중대한 문제가 있기에 발생하는 증상으로 봐야 할 것이다.
사회구성원 전체의 삶의 방향에 공통된 큰 흐름의 문제가 있기에 구성원 중의 일부가 자신의 삶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존재 자체를 원점으로 돌리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악성 댓글', '베르테르 효과' 등등의 단편적인 요소에 원인을 돌리면서 더욱 중요한 사회 흐름의 문제를 직면하는 것을 계속 미룬다면, 가치있는 교훈을 얻어 흐름의 전환을 이루어 낼 때까지 우리 사회는 더욱 심한 고통에 면해야 할 지 모른다.
자신의 삶의 방향을 과거·현재·미래 속에서 바라보고 사회 전체의 흐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넓게 바라볼 때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