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에요. 당신은 여자 마음을 몰라서 하는 소리에요.”

“안 그럴 걸…….”

나와 그이는 오늘 아침, 또 의견이 맞지 않아 애를 먹었다. 의견은 처음부터 원래 잘 맞지 않았다. 달라도 어쩌면 그렇게 다를 수 있을까?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결혼 전, 맞지 않는 부분은 맞추어 가면서 살아가면 된다고 쉽게 생각을 했었다. 무조건 그가 팥을 콩이라고 해도 나는 무조건 콩이라고 하고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그건 몰라도 너무 모르는 일이요,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팥을 콩이라고 하려니 그건 분명히 콩이 아닌 팥이라는 생각에 팥이라고 하기로 했다.

자라 온 과정도 우린 너무 달랐다. 중·고등학교 시절 그이는 일요일이면 들에 나가 일을 하느라 공부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집에서 담배를 따는 날이라 일군을 얻어 일을 하는데도 공부하라는 아버지의 성화에 방에서 나올 수 없었다. 음식 식성조차도 그이와 나는 너무 달랐다. 그이는 고기를 좋아하는데 나는 고기 냄새가 싫어 아예 입에도 대지 않는다. 둘이 여행을 가면 그이는 처음 먹어보는 이상한 음식을 선호하는데 나는 먹어 본 것 이외에는 잘 먹지 않으려한다. 그이는 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없다고 하는데 나는 돈이 없어도 없다는 소리를 잘 하지 않는다. 그런 나를 그이는 이상하다고 했고 나는 그이가 참으로 이상 했다.

그는 수학, 과학을 좋아하는 논리적인 사람이었고 나는 국어, 역사를 좋아하는 감성적인 사람이었으니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또한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였다. 술을 보면 안주 생각이 나고, 안주 보면 술 생각이 난다는 그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내게 그이는 자기가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먹느냐며 항상 적당히 먹는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남편이 원망스럽고 야속하기만 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우리 부부를 천생 연분 이라고 하니 세상에 그런 천생연분도 있는 것일까?

2003년 12월 25일이었으니 지금부터 꼭 10년 전 크리스마스이브의 일이었다, 2004년을 며칠 앞두고 양성산을 다녀 온 우리는 한해를 마무리하며 저녁에 맥주잔을 들고 마주 앉았다. 손에 맥주잔을 들고 그이를 바라보니 문득 나의 삶도 어느 덧 중년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 좋아하는 남편을 원망하며 살아가는 날들이 합쳐져서 먼 훗날 내 인생을 마감한다고 생각하니 결코 돌이 킬 수 없는 세월, 거슬러 올라 갈 수도 없는 강물, 곧 멈추어 서게 될 강물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하염없이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서 있을 초라한 내 모습이 그려졌다.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꿀 힘을 주시고,

바꿀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의연함을 주시고,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예지를 주시옵소서.」

-어느 성자의 기도문에서-

 

‘그래, 누가 나를 팔불출이라 해도 앞으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며 살아가자.’

눈을 크게 뜨고 그이를 바라보니 눈가에 깊게 파인 주름이 자자하고 머리는 희끗희끗 어느새 백발이 성성하다.

이튿날 아침, 나는 물 한잔을 찻잔에 받쳐 들고 그이에게 건네주며 속으로 최면을 걸었다.

‘그래, 바꿀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자. 앞으로는 남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자.’

그 후, 그 일은 아침마다 계속 되었고 내 마음도 다소 편해지며 그이에게 향하던 원망이 조금씩 누그러지는 듯 조금은 존경스러워 지기도 했다.

그런대로 10년 세월이 흘러 작년 12월 어느 날, 부부 송년 모임이 끝난 후 당연히 운전은 나의 몫이었기에 차키를 달라고 했다. 그이는 자기가 끌고 가겠다며 운전석에 앉는 것이었다.

“오늘은 건배만 했어. 앞으로는 분위기 봐서 먹고, 나 때문에 술자리가 길어지는 일은 없 을 거야.”

“아니, 뭐, 뭐라고요?”

남편을 한참 쳐다보던 나는 멍하니 그대로 앉아 있었다. 꼭 술잔을 더 돌려 애 간장을 그렇게도 태우더니. 남은 재미있다고 웃을 때 나는 그를 얼마나 원망했는지…….

그렇게도 기대를 하고 바라던 소리를 들으니 참으로 고맙고 감사했다. 여기까지 오기가 참으로 힘들었다. 사 십 여년의 오랜 세월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포기하고, 내려놓고, 비우고 그리고 바꿀 수 없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그이를 더 빨리 변화시킨 것은 아닐까? 바꿀 수 없음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 주심을 감사하며 사랑이란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 오늘 아침도 나에게 최면을 걸어 본다.

‘앞으로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 진영옥 동화작가, 전 주중초 교장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