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옥
동화작가·전 주중초 교장

"아니에요. 당신은 여자 마음을 몰라서 하는 소리에요.""안 그럴 걸…."
필자와 그이는 오늘 아침, 또 의견이 맞지 않아 애를 먹었다. 의견은 처음부터 원래 잘 맞지 않았다.
달라도 어쩌면 그렇게 다를 수 있을까?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결혼 전, 맞지 않는 부분은 맞춰 가면서 살아가면 된다고 쉽게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그건 몰라도 너무 모르는 일이요,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자라 온 과정도 너무 달랐고 음식 식성조차도 너무 달랐다.
그는 고기를 좋아하는데 필자는 고기 냄새가 싫어 아예 입에도 대지 않는다. 그는 수학, 과학을 좋아하는 논리적인 사람이었고 필자는 국어, 역사를 좋아하는 감성적인 사람이었으니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03년 12월 25일이었으니 지금부터 꼭 10년 전 크리스마스이브의 일이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저녁에 맥주잔을 들고 마주 앉았다.
술 좋아하는 남편을 원망하며 살아가는 날들이 합쳐져서 먼 훗날 내 인생을 마감한다고 생각하니 결코 돌이 킬 수 없는 세월, 거슬러 올라 갈 수도 없는 강물, 곧 멈추어 서게 될 강물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하염없이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서 있을 초라한 내 모습이 그려졌다.
'그래, 누가 나를 팔불출이라 해도 앞으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며 살아가자.'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니 눈가에 깊게 파인 주름이 자자하고 머리는 희끗희끗 어느새 백발이 성성하다. 이튿날 아침, 물 한 잔을 찻잔에 받쳐 들고 그에게 건네주며 속으로 최면을 걸었다.
'그래, 바꿀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자. 앞으로는 남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자.'
그 후, 그 일은 아침마다 계속 됐고 내 마음도 다소 편해지며 그에게 향하던 원망이 조금씩 누그러지는 듯 조금은 존경스러워 지기도 했다.
그런대로 10년 세월이 흘러 지난해 12월 어느 날, 부부 송년 모임이 끝난 후 당연히 운전은 나의 몫이었기에 차키를 달라고 했다. 그는 자기가 끌고 가겠다며 운전석에 앉는 것이었다.
"오늘은 건배만 했어. 앞으로는 분위기 봐서 먹고, 나 때문에 술자리가 길어지는 일은 없을 거야." "아니, 뭐, 뭐라고요?"
남편을 한참 쳐다보던 나는 멍하니 그대로 앉아 있었다. 꼭 술잔을 더 돌려 애 간장을 그렇게도 태우더니. 남은 재미있다고 웃을 때 나는 그를 얼마나 원망했는지…. 그렇게도 기대를 하고 바라던 소리를 들으니 참으로 고맙고 감사했다.
여기까지 오기가 참으로 힘들었다. 40여 년의 오랜 세월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포기하고, 내려놓고, 비우고 그리고 바꿀 수 없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그이를 더 빨리 변화시킨 것은 아닐까?
바꿀 수 없음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 주심을 감사하며 사랑이란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
오늘 아침도 나에게 최면을 걸어 본다. '앞으로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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