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규(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민족의 큰 명절인 설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 서로 떨어져 지냈던 가족들이 서로 모여 함께 음식을 만들고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다. 명절은 바쁘게 떨어져 사는 가족들이 그간 나누지 못한 애틋한 정을 나누는 귀한 시간이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도로에서 보내면서도 고향으로, 또 가족에게로 움직인다.


그런데 이 명절이 늘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처음 반가운 시간이 지나면 그간 살았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며 서로 살아가는 깊은 이야기들까지 하게 되는 데, 이 시간이 부담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동안 형편이 더 안 좋게 됐거나, 가족들에게 내어놓을 만한 대답이 없는 경우, 특히 결혼 시기를 놓친 자녀들이나 졸업 혹은 취업을 눈앞에 둔 사람들이 더욱 그러하다.


때로는 이런 이야기들 중에 오랜 세월 묻어두고 잊으려했던 형제나 친척 사이간의 해묵은 문제가 터져 서로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우리와 같은 명절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유월절'이다.
 

유월절이란 말은 출애굽기 12장 13절 말씀인 '내가 애굽 땅을 칠 때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해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에서 유래했으며, 그 뜻은 '넘어가다', '지나가다'를 의미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을 내렸다. 유월절은 그 중에서 마지막 열 번째 재앙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은 마지막 재앙으로 이집트 땅에 있는 모든 생물들의 첫 번째 난 것들의 생명을 취하겠다고 모세에게 말한다.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와 같은 재앙을 피하기 위해 각자의 집 문 앞에 양의 피를 바르도록 지시한다. 그리고 열 번째 재앙을 수행하는 죽음의 천사가 그 피를 보면 그 집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무사할 것이라는 약속이 주어진다.

그 땅의 모든 처음 난 것들이 죽는 재앙이었지만 이런 말씀의 흐름에 따라 유월절은 이집트에 대한 심판의 의미보다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구원의 의미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문 앞에 양의 피를 바른 집에 누구라도 들어가면 죽음을 면할 수 있다는 것, '넘어감의 은혜'가 이 사건의 중심이다. 이번 명절은 이러한 '넘어감의 은혜'가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넘어간다'는 것은 말 그래도 바로 앞에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그대로 두고 피해서 지나간다는 것이다.


친지들 간에 그간 해묵은 감정이 있어도 넘어가고, 민감하고 말하기 꺼려하는 것이 있어도 넘어가는 것이 서로에게 베푸는 '은혜'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상대방의 약점이나 혹은 그동안 마음에 담아뒀던 상처가 생각날 때, 바로 그 순간이 바로 '넘어감의 은혜'를 베풀 순간이다. 이 은혜가 넘쳐 서로 간에 기쁜 기억으로 남는 이번 설 명절이 되기를 바란다.

/이동규(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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