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희돈 청주대교수

우리는 오천년 역사를 자랑하지만 수 없이 침략만 받아왔다. 한말에는 약해질 대로 약해져 식민지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식민지에서 풀려나자 또다른 강대국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심지어 한반도에서 우리 민족끼리 강대국의 대리전을 치렀다. 그 대가로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이 되어 지금까지 살고 있다. 우리의 근세사는 이처럼 부끄럽기 짝이 없다.
십여년 전 외몽고에 간 적이 있었다. 우리 일행을 안내하는 이는 울란바토르 대학 한국어학과 학생이었다. 몽고에서는 한국을 어떤 나라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단 세 마디였다. 무지개의 나라. 자기나라 말과 문자를 가진 나라. 과거에는 고통을 받다가 지금은 잘 사는 나라. 난생 처음 한국에 대한 외국인의 긍정적인 평가를 들었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오늘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말 중에 '강국'이라는 말이 하나 생겼다. it강국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아이티 강국이란 뜻이 되겠다.
우리나라가 아이티강국이 되기까지는 여러 요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중 가장 원천적인 요인은 한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류의 문명사는 정보혁명의 발전과 함께 성장해 왔다.
일차 정보혁명은 언어의 발명이고, 이차 정보혁명은 문자의 발명이며, 삼차 정보혁명은 금속활자의 발명이고, 사차 정보혁명은 컴퓨터의 발명이다. 그러니까 사차 정보혁명의 발명품인 컴퓨터와 이차 정보혁명의 발명품인 한글과 궁합이 딱 맞아떨어져 아이티강국으로 발돋움했고 앞으로도 무한한 발전가능성을 담지하고 있다. 이는 우리 나라의 이차 정보혁명인 한글이 그만큼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문자라는 뜻이 되겠다.
한글은 모음 열 넷(지금은 열), 자음 열 넷 즉 스물 네 개의 기호로 소리를 표기한다. 모음은 천·지·인 삼재를, 자음은 발음기관을 본따 만들었다.
철학을 담고 있으면서도 과학적이다. 자음과 모음의 배합이 단순하여 경제적이다.
과학적이고 단순함으로 배우기 쉽고 읽기 쉽고 사용하기가 편리하다. 그래서 독창적이다. 독창적인 것이란 이와 같이 새롭고 유익한 것이다.
한글의 이러한 과학성과 독창성과 단순성과 경제성은 컴퓨터를 만났을 때, 그 가치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몇 개의 기호로 모든 소리를 표기하고, 기호의 단순한 배합으로 효율성을 높이고, 아이콘 같은 새로운 언어와도 잘 어울린다. 즉 정보화시대를 선도하는 컴퓨터와 딱 맞아 떨어지는 디지털 문자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유럽의 어느 학자는 '한글은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고 인류의 위대한 지적유산'이라고 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 사람이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은 아닌 듯 싶다.
이제 한글이 인류 문명사에 빛나는 문화유산임은 세계가 다 인정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를 더욱 알차게 가꾸어 갈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원천기술인 한글을 가지고 정보화시대를 이끌어갈 책임도 우리에게 있다. 이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는데 우리는 하루바삐 눈을 돌려야 한다. 그리고 집중해야 한다.
한글날이 돌아온다. 이날 하루만이라도 문자로 가슴을 출렁이게 하는 말을 휴대전화로 날려보면 어떨까. 내가 날리는 문자가 한글임을 되새기면서. 이렇게 시작해보는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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