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수필가

[충청일보]밤새 온 세상이 하얗게 눈이 내렸다./ 풍성하게 흰떡가래 뽑고도 남아/ 주렁주렁 고드름으로 매달렸고/ 아이들 웃음이 골목 안에 흥청했다./ 또깍또깍 가래떡 써는 어머니 곁/ 화롯불엔 가래떡이 노릇이 구워지고/ 어린 날 까닭모를 설명절의 설렘은/ 그렇게 밤새 꿈처럼 익어갔다/ 설빔의 그 감미로운 새물내/ 세뱃돈대신 배급처럼 주어지던/ 옥춘, 약과, 송화다식…/ 달콤하고 쌉싸름했던 설날의 그 맛/
 

이제 곧 설 명절이다.

아무리 세태가 개인 이기주의로 변해간다 해도 명절하면 가장 먼저 떠오는 단어가 어머니요 고향이다.
 

가족과 친지, 조상이 아닌가 싶다. 따뜻함과 그리움이 물씬 와 닿는다.
 

이번 설 명절은 5일에서 연차활용하면 최대 9일까지로 꿀연휴라 이른다.

올해도 어김없이 해외 또는 국내 유명 휴양지로 여행하는 사람이 늘겠지만 그래도 고향을 찾는 이가 더 많으리라 본다.
 

다산 정약용선생이 말한 세 가지 즐거움 중에 첫 번째로 꼽히는 것은 어렸을 때 뛰놀던 곳에 어른이 돼 돌아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가난하고 궁색할 때 지나던 곳을 출세해 오는 것, 세 번째로 나 혼자 외롭게 찾던 곳을 마음 맞는 좋은 벗들과 어울려 오는 것이라 했다. 음미해 볼수록 흐뭇한 미소가 머무는 말이다.
 

어릴 때 향수어린 그 즈음에 마음이 이르면 푸근하고 넉넉해진다.
 

나이 들수록 자꾸 뒤돌아봐지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옛 풍습을 고수하고픈 심사가 든다.
 

하지만 아무리 떡가루 같은 눈이 내려도 필자는 어머니처럼 가래떡을 뽑지 않는다.
 

나 자신도 번거로움을 피하고 간소화 하려는 편의주의에 익숙해져 있음을 어찌할 수 없나 보다.
 

그런 와중에 진천군에서 명절맞이 군민 이웃사촌되기 운동을 통한 소외된 이웃들에게 명절음식 및 선물 전달 등 나눔 활동을 보면 옛정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지난 1995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특수시책으로 모두 39회에 걸쳐 9700여 기업체와 기관·단체 등이 참여해온 나눔 활동이다.
 

나눔은 반드시 물질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가능하다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어느 날,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는 한 젊은이가 석가모니를 찾아와 "가진 것도 없는데 어찌 베풀며 사느냐"고 물었다.
 

석가모니는 아무리 재산이 없다 해도 줄 수 있는 일곱 가지는 누구나 다 있는 것이라 일러줬다는 일화다.
 

우선 화색을 띠고 부드럽고 정다운 얼굴로 남을 대하는 화안시(和顔施)가 있고, 말로써 얼마든지 베풀 수 있는 사랑과 위로, 격려의 말, 양보와 부드러운 말을 통한 언시(言施)가 있다.
 

또한 마음의 문을 열고 따뜻한 마음을 주는 심시(心施)와 호의를 담은 눈으로 사람을 보는 안시(眼施)를 든다.
 

그리고 몸으로 때우는 것으로 남의 짐을 들어주거나 일을 돕는 신시(身施)와 때와 장소에 맞게 자리를 내주어 양보하는 좌시(座施), 굳이 묻지 않고도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알아서 도와주는 찰시(擦施)가 있다.
 

이 일곱 가지를 행해 습관이 붙으면 행운이 따르리라고 했다 한다.
 

어린 날 설날의 설렘을 안았던 그 마음으로 새겨볼 일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