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혜 충북대 교수
객원 논설위원

"이야~~ 우리 아들 코 밑에 거뭇거뭇 수염 나네. 이제 어른 되려나 보다. 어디 다른 곳은 어때?" 내가 큰 아이의 얼굴이며 팔·다리를 이리 저리 쳐다보며 탄성을 질렀다. "아이 진짜" 외마디 소리와 함께 휙 등을 돌리는 녀석 뒤에서 수 만 가지 생각들이 뒤엉키고 있는 이유는 뭘까?
사춘기. 얼마 전부터 큰 아이는 몰라보게 변하고 있다. 허스키하게 굵어진 목소리도, 항상 내 눈 아래에서 녀석의 정수리를 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깨고 자란 키도, 270이란 숫자를 무색하게 만드는 발길이도 그렇다.
시원한소나기 한 번 맞고 쑥쑥 자라는 대나무 죽순처럼 녀석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었다. 변하고 있는 것이 어디 키나 몸무게, 목소리뿐일까?
생각도 변하고 가슴도 변하고, 또 자라고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들이 자라고 크고 변화가 생기기에 저 자신도 무척이나 혼란스럽지는 않을까 싶다. 사실 지난 여름부터 나는 큰 아이가 겪고 있는 사춘기 때문에 은근히 걱정하고 있었다.
엄마인 내가 남자아이의 사춘기를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지가 걱정스러웠고, 지난 시절 친정어머니의 속을 까맣게 태웠던 나의 철없던 사춘기에 대한 대가를 혹시 내 아이에게 받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이기적인 걱정도 내재되어 있었다.
내가 사춘기를 겪고 있을 때 친정어머니의 푸념은 "너랑 똑같은 자식 낳아서 길러 봐라"였으니 말이다. 그 말이 이제 와서 이렇게 무서운 공포로 돌아올 줄이야 누가 알았나. 초조해 하는 나에게 누군가 이런 충고를 해주었다. “사춘기는요, 감기 같은 것이에요. 살짝 스치듯이 열만 나는 경우도 있고요 심하게 기침도 하고 가래도 나오고 온 몸이 욱신욱신 쑤시는 경우도 있어요. 아주 심하면 독감이나 폐렴으로 앓는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기침을 멈추라고 해서 멈추어지는 것도 아니고 콧물을 흐르지 못하게 한다고 해서 멈춰지는 건 아니거든요. 약을 먹으면 잠시 완화가 되는 것이지 완쾌가 되는 건 아니에요.
감기는요 시간이 필요해요.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사그라져요. 사춘기도 그래요. 내 몸 속의 호르몬들이 요동을 치면서 몸도 자라게 하고 마음도 자라게 하고 어른이 되라고 거뭇거뭇 수염도 나게 해요. 내 머리 속에서 이상한 생각을 안하고 싶어도 이상한 생각이 나고요, 야한 꿈을 안 꾸고 싶어도 자꾸만 그런 꿈을 꾸게 되거든요. 다그치지 마세요. 그리고 조바심도 내지 마세요. 오히려 병을 더 악화시킬 수 있어요. 그냥 잠시 기다려 주세요. 가끔은 감기약처럼 맛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가 실수한 이야기도 좋고요, 일상에서 일어났던 별 것 아닌 이야기들도 좋아요. 양념을 해서 맛있게 버무려서 들려주세요.” 늦은 저녁에서야 겨우 잠든 녀석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속으로 되뇌였다.
‘아들! 몸도 마음도 정신없이 자라고 변화하는 너도 불안해하고 힘들어 하고 있었구나. 잘 견뎌줘서 고마워. 분명 힘이 들 텐데, 그래도 오늘은 짜증을 한 번밖에 안 부려서 참 다행이었어.’ 기특하고 고마운 생각에 여드름이 송송 난 녀석의 이마에 입맞춤을 해주었다.
이상하다. 녀석이 아주 어렸을 때 달려와 내 품에 안기면 코 끝에서 맴돌던 그 박하향이 그동안 큰 아이의 여드름 속에 꼭꼭 숨어 살았었나 보다. 입맞춤을 하는 순간 향기가 터져 내 코끝을 이렇게 찌르는 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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